영화는 소리와 빛이 빚어낸 장면으로 기억된다. 충무로는 올해 불황의 터널을 내달리면서도 영화팬 들의 뇌리에 각인될 명장면들로 어둠을 밝혔다. 영화평론가 5명이 꼽은 올해 한국영화 명장면으로 2008년을 되돌아본다.
■ '추격자'-김영진(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
출장 안마소를 운영하는 전직 형사 중호(김윤석)가 열쇠꾸러미를 든 채 부하에게 실종된 미진(서영희)을 온 동네를 뒤져 찾으라고 지시할 때의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카메라가 서서히 위로 움직이며 동네의 밤 전경을 비추는 이 장면은 누구도 보호해주거나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우리 시대의 비극을 제대로 형상화한다. 개인 스스로의 힘으로 비극을 돌파해야 하는 이 시대의 막막한 집단정서를 이처럼 탁월하게 응축한 예가 또 있을까.
■ '영화는 영화다'-이수원(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강패(소지섭)가 부하 한 명을 불러놓고 생신 때 어머니 꼭 찾아 뵈라고 하면서 돈을 준 뒤 장난하듯 서로 주먹을 교환하는 장면을 추천한다. "영화는 단지 영화일 뿐"이라는 이 영화의 일관된 주제가 대사 없이 행동으로 잘 표현된 장면이다.
잠시 쉬어가는 듯한 평온함에서 발산되는 감동이 가슴을 참 찡하게 만든다. 거친 조폭들의 흔들리는 심리를 매우 자연스럽게 묘사하는 장면이라 더욱 인상 깊게 남는다.
■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박진형(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올 상반기 화제작이었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마지막 장면을 꼽는다. 영화의 모델이 됐던 국가대표 여자 핸드볼 팀을 실제로 지휘한 임영철 감독은 "비록 은메달이지만, 금메달 못지않은 그런 투혼을 발휘했다"며 선수들의 노고를 치하한다.
이내 임 감독이 어려운 주변 여건을 이야기하다 끝내 눈물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는 모습은 이 영화의 진심을 제대로 보여준다.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을 명장면으로 만들어주는 최고의 마침표라 할 수 있다.
■ 경축! 우리사랑-조영정(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작은 영화 '경축! 우리사랑'의 한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젊은 하숙생과 정분이 난 하숙집 아주머니 봉순(김해숙)이 덜컥 임신을 한 뒤 잠을 이루지 못하다 결국 벌떡 일어나 "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라며 하숙생 총각의 방으로 가는 장면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의 마음고생과 고민과 거짓말로 이야기가 전개될 거라는 예상을 깬, 충격적이고 획기적인 장면이다. 무엇보다 보는 이의 가슴을 후련하게 하는 카타르시스야말로 이 장면이 선사하는 최대의 기쁨이다.
■ '달려라 자전거'-정지욱(영화평론가)
지난 8월 소리 소문 없이 개봉했다 종영한 '달려라 자전거'에서 주인공 수욱(이영훈)을 짝사랑하는 하정(한효주)이 "남자들은 왜 그래요. 자기들 멋대로야"라고 불만을 토로하는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남자들에 대한 여성의 시각이 솔직하게 담겨 있어 좋았다. 육체적인 사랑에만 탐닉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풋풋한 사랑이 싱그럽게 묘사된 장면이다. 다른 영화들이 놓쳐온 보편적인 사랑이야기를 잘 포착해 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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