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쏴~아' 물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뜬다. 아내는 어느새 일어나 두꺼운 윗옷을 걸치고 컵에 우유를 따라 레인지에 데우고 있다. "흠"괜시리 헛기침을 한번 하고 물 한 컵 마시고 나니 머리에 수건을 둘러쓴 아들녀석이 화장실에서 나온다. 언제부턴가 이 녀석 얼굴을 한번이라도 살펴보려면 고개를 들어 한참 올려다봐야 한다. 나는 162cm에 아들은 184cm. 그나마 젊어선 165cm는 됐는데 언제부턴가 자꾸만 줄어드는 키가 원망스럽다.
아들은 제 엄마가 건네는 우유잔을 허겁지겁 숨도 쉬지않고 마셔버린다. "좀 살살 천천히 마셔라. 그러다 체하면 어쩌려고…." 대답이 없다. "출근 준비하는 새벽은 일초도 아껴야 해요." 이 녀석이 한 말을 떠올리면서도 좀 서운했지만 내색은 하지않았다. 아들 주위를 맴돌면서 이 녀석 하는 짓을 바라보니 사각팬티하나만 걸친 채 로션을 손바닥에 쓱싹 문지르더니 얼굴에 착착 소리를 내면서 바르고 머리에 씌워진 타월을 벗고 정수리에 서있는 몇 올의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꾹 눌러준다. 머리카락 정리하는데 한 2분 걸렸나?
메리야스를 주워 입고 그 위에 흰 와이셔츠를 걸친다. 그리곤 검은 바지를 입더니 빨간색에 군데군데 반짝이는 무늬가 들어있는 넥타이를 익숙한 솜씨로 이리저리 돌려 맨다. '난 평생 넥타이를 댓 번이나 매봤지?' 어렵게 배우고도 매번 비뚤어지고 각이 잘 안 맞아 애를 먹었는데 아들은 한번에 성공시킨다. 책상 위에서 네모난 핀을 집어 들어 와이셔츠 소매를 고정시킨다. '저건 또 뭐야?' 소매가 각이 서서 핀이 반짝거리는 게 보기는 좋다. '참 세상 살다 보니 별 것이 다 내 기를 다 죽이는구나'
거울 뒤에 서서 요리조리 고개를 돌려가면서 흘낏거리는 아버지를 이제야 보았는지 아들은 희미하게 웃음을 보내준다. 아까 대꾸 없어 오그라든 마음이 그 미소 한번에 싹 풀어진다. 그사이 아내는 아들의 구두를 꺼내 광을 내기 시작한다. 콧노래도 불러가면서. 아들 출근 시킬 때가 하루 중 제일 행복하다는 아내. 말없이 두 모자는 손발이 척척 잘도 맞는다. 바지를 입고 지퍼를 올리고 벨트로 마무리를 하고 나니 아들의 잘생긴 얼굴이 더욱 돋보인다. 그 위에 검은 양복을 입고 코트를 걸치고 서류가방을 어깨에 멘 뒤, 제 엄마가 정성스럽게 광을 낸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서면서야 겨우 아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다녀오겠습니다."
일년 째 정확하게 5시35분이면 집을 나서는 아들의 뒷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내는 2층 복도에 서서 창문을 열고 내려다본다. 새벽바람 가르며 농장으로 나가는 나를 보낼 땐 현관 앞도 아닌 주방에 서서 얼굴도 마주하지않고 "댕겨와요"한마디면 끝이었는데…. 춥다면서 호들갑스럽게 문을 열고 종종걸음으로 들어오는 아내를 한번 흘겨 보고는 다시 안방 이불 속으로 들어가 납작 엎드려있으니 아내가 차디찬 손을 이불 속에 쑥 넣고 묻는다.
"새벽부터 뭐가 못마땅해서 자꾸 힐끔거려?" "아니 뭐, 못난 내가 뭐 성질 낼 거리나 있간디?" "내가 당신하고 한두 해 살았나? 당신 뒷꼭지만 봐도 성질이 났는지 다 아는구먼. 후딱 말혀봐." "그려, 당신은 아들 출근 시키는 게 왜 나하고는 차별 주는가?" "응? 그게 뭔 소리데?" "아, 나가 새벽에 농장 나갈 적엔 언제 한번 살갑게 문 열어줌서 창문 열고 쳐다보기나 했남? 눈 한번 마주침서 웃어줬냐고. 그저 형식적으로 '댕겨오쇼이' 소리만 혔지."
"히히히…. 그래서 시방 당신이 질투 허는 거요?" "질투는 뭔 얼어죽을 질투, 내가 성질이 못 되서 트집잡는 것이지." "알먼 됐네. 내 평생 소원이 뭐라했소. 하얀 와이셔츠에 양복 쫙 빼 입고 출근허는 남편 배웅한번 해봤으면 좋겠다고 귀에 딱지 앉도록 말했는디, 이제야 큰 아들이 그 소원 풀어줘서 그놈 장가갈 때까지만이라도 하고싶었던 걸 해보자 허는디 왜 그걸 트집잡는다요? 인자 당신도 늙어가는가비요." '끙~' 할 말이 없다.
아내한테 등을 돌리고 멀뚱하게 벽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쳇, 그럼 농사꾼 말고 회사 댕기는 사람이나 공무원한 테 시집을 갔어야지. 맨날 삽이나 어깨에 매고 바지가랑이에 흙이나 묻혀 가지고 댕기는 농사꾼헌티 시집와 놓고는 인자 와서 평생 소원을 찾고 난리여.'
사실 아내는 내겐 너무도 아까운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그저 젊어서 똥배짱만 두둑한 무일푼 총각한테 시집와서는 병든 시부모님 모시면서 어린 시동생들 공부 가르쳐 장가까지 보내고, 아이들 셋 낳아 기르고 공부시키느라 자신의 꿈은 생각조차 해보지 못하고 세월을 보냈다. 가진 게 없던 난 이것 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에 쪼들려 결국엔 42년 동안 내 꿈과 희망을 모조리 심어놓았던 고향을 등지고 도시 속으로 스며들었었다. 그때의 막막함이라니…. 그래도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오늘이 있기까지 아내는 꿋꿋하게 나를 지켜봐 주었고 세 아이는 날 믿어주었다.
그렇게 도시생활 어느새 10여년, 양복차림의 말쑥한 신사들을 많이 봐온 아내가 어느날부터인지 함께 외출할 적엔 내게 한 벌뿐인 양복을 입히려 애를 쓴다. "당신도 와이셔츠에 양복을 입으면 멋있을 것인디. 우리 한번 입어보자 응?" "나는 편한 게 제일 좋아. 이 점퍼가 얼마나 편한데." "그러지 말고 오늘 한번만 양복 입어봐." "씰데없는 소리,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허는 것이여. 결혼식엔 어쩔 수없이 입지만 넥타이 매면 얼마나 목이 답답헌지 아는가? 나는 싫어."
아내는 내게서 채우지 못했던 마음을 지금 큰 아들한테서 조금씩 메워 가고있는 것 같다. 그걸 이해 하면서도 한편으론 서운함이 자꾸만 가슴을 파고드는 건 왜일까? 내가 못나서일까?
인천 부평구 부평6동 김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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