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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미네르바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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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미네르바 추천도서

입력
2008.12.2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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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세밑이다. 예년에는 크리스마스를 의식하지 않더라도 길거리에서 들려오던 캐럴에 문득문득 연말연시라는 것을 깨닫곤 했는데 올해는 캐럴을 한번이라도 들어보기나 했나 싶을 정도다. 징글벨을 울릴 기분이 어디 나겠는가, 촛불이 이어지다 경제위기로 마감하고 있는 2008년인데. 이러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지난 시대의 유물로나 기억되지 않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까지 든다.

한 사회의 문화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출판계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한국 출판계야 '단군 이래 위기 아닌 적이 없었다'는 우스개 같은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늘상 위기를 외쳐왔지만, 요즘은 한 발 더 나가 '빙하기'라는 수식어가 아예 굳어졌다. 한 대형 출판사가 몇 달째 매물로 나와있는데 팔리지 않고 직원들 월급을 몇 개월째 못 주고 있다느니, 유수의 출판사들이 입주한 파주출판단지의 건물들이 하나둘 비어가고 있다느니 하는 흉흉한 소문이 들린다.

그래도 책은 쏟아져 나온다. 1960년 한국일보가 제정, 내년이면 50년이 되는 최고 전통과 권위의 책 축제인 한국출판문화상에는 올해도 지난해보다 30% 가까이 늘어난 양서들이 접수됐다. 그리고 좋은 책들은 읽힌다. 경제가 위기이면 사람들이 책 구매 등 큰 돈 드는 것도 아닌 문화 쪽의 지출에서부터 지갑을 닫는다고들 하지만 독자들은 그래도 좋은 책은 외면하지 않는다.

좋은 책을 고르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올해를 돌이켜보면 쓴웃음이 나는 일이 하나 떠오른다. 국방부가 이른바 불온도서로 지정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된 일이다. 그 불온도서 중에 지난해 한국출판문화상 저술상(교양 부문)을 수상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이 포함됐다. 서구 자본주의 주도의 세계화를 깊이있고도 신나게 비판한 이 책이 국방부 지정 불온도서가 됐다는 소식에 오히려 더 많은 독자들이 일부러 찾아 읽은 것이다.

경제위기가 현실화한 하반기에는 또 한번 출판계에 돌풍이 일었다. 미네르바 신드롬이라는 돌풍이다. '고구마 파는 늙은이'로 자처하며 인터넷에서 세계경제의 모순과 한국경제의 위험성을 설파, 온라인 경제 대통령으로까지 추앙된 미네르바. 그는 누리꾼들에게 두 가지 충고를 던졌다. 첫번째가 "2010년 전까지 주식은 쳐다보지도 말라"는 부정적인 것이었다면 두번째 충고는 "책 읽고 공부하라"는 적극적인 것이었다.

그는 몇 권의 책을 추천했다. '미네르바 추천도서'로 불리게 된 이 책들이, 국방부 지정 불온도서에 이어 출판계에는 효자 노릇을 했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같은 고전부터 미국의 대표적 진보 지식인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등 미네르바 추천도서 목록에 오른 책들이 갑자기 소리소문없는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절판된 책을 다시 찍어달라는 요청이 출판사에 빗발쳤는가 하면, 미네르바가 참고자료로 제시한 일본의 경제 드라마 <하게타카> 의 원작 소설이 신속하게 번역돼 출판되기도 했다. 가히 신드롬이다.

국방부와 미네르바의 의도는 전혀 다른 것이었지만 사람들 좋은 책 읽게 만들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고마울 따름이다. 미네르바는 공부하라며 그 이유로 "이제는 모르면 당하는 게 아니라 털리는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울한 크리스마스에 세밑이지만 국방부 불온도서나 미네르바 추천도서 읽으며, 서로 털고 털리지 않는, 따뜻한 새해 꿈꿔보는 것도 좋겠다.

하종오 문화부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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