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인 25일 낮, 여의도 국회 본청 국회의장실.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매트리스와 담요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전날 밤 송영길 최고위원 등 10여명이 농성하면서 썼던 것들이다.
파행과 대치가 8일째로 접어든 크리스마스 날, 국회는 괴괴한 모습이었다. 국회의사당의 대부분 공간은 적막했지만, 정무위 행정안전위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주변에는 플래카드, 벽보가 어지럽게 붙어있었다. 소화기와 해머까지 등장했던 18일 충돌의 잔해들이었다. 그것은 우울하고 씁쓸한 국회의 자화상이자, 법안 전쟁을 앞둔 폭풍전야를 연상케 했다.
국회는 이미 토론의 장이 아니라 농성장, 대결의 ‘전장’이었다.
이날도 6층 문방위 회의실 앞에는 민주당 보좌진 30여명이 모여 농성을 벌였다. 회의실 출입문을 가로막은 의자들은 바리케이드 역할을 했다. 바깥 벽에는 ‘언론장악 악법 반대’구호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있었고, 벽 곳곳에 ‘재벌방송 반대’‘댓글까지 처벌할래?’등이 적힌 소형 벽보들이 가득했다. 회의실 안에는 의원 5, 6명과 보좌진들이 있었다. 4층의 행안위 회의실 벽에도 ‘강행 처리 반대’‘마스크처벌법 반대’ 등의 구호가 적힌 벽보 외에도 ‘난 집에 가고 싶을 뿐이고’등 ‘난~뿐이고’란 유행어가 적힌 대자보가 붙어있었다.
정무위 회의실 문 안쪽에는 의자와 책상 등으로 만든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다. 복도의 한 구석에는 의원 및 보좌진들이 먹다 남은 도시락과 과자, 과일 등을 볼 수 있다.
농성이 길어지면서 감기나 몸살에 걸리는 의원들도 늘고 있고, 일부 보좌진들은 녹초가 됐다. 한 보좌관은 “농성장이 건조해 감기에 걸리기 쉽다”면서 “보좌진 농성조는 12시간 또는 24시간 단위로 교체되다 보니 무척 힘이 든다”고 토로했다.
국회의장 집무실이 농성장으로 쓰이다 보니 김형오 국회의장은 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다. 김 의장은 종종 사무총장실에서 사무처 간부들의 보고를 받고 있다. 의장실 관계자는 “귀빈식당 일부를 임시의장실로 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꿎은 공무원들은 상임위가 열릴 것에 대비, 국회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23일에는 한 부처 차관과 실ㆍ국장 등 20~50명이 상임위 앞에서 대기하다 허탕만 치고 되돌아가기도 했다. “국회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뛰어야 할 공무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역활동에 열심인 의원들의 속내는 여야를 떠나 새까맣다. 연말 다양한 지역구 활동을 포기해야 하고 특히 불우이웃돕기 등 서민을 위한 봉사 계획을 갖고 있던 의원들의 마음 고생은 더욱 크다.
김광덕 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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