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신입생 때 영어로 된 마르크스의 <경제학ㆍ철학 초고> 를 읽고 받은 감동을 잊을 수 없어요. 그 책을 보면 지금도 가슴이 뜁니다.” 경제학ㆍ철학>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에게 <소외론 연구> (1978)는 필독서의 하나였다. 이른바 386세대라는 그 시절의 대학생들도 이제는 닳고 닳은 기성세대가 되어버렸지만, 그 책을 쓴 정문길(67) 고려대 명예교수는 여전히 청년의 가슴을 지닌 듯했다. <니벨룽의 보물> 은 정 교수가 뜨거운 가슴으로 평생 천착해 온 마르크스ㆍ엥겔스 사상을, 정교한 문헌학ㆍ서지학의 방법으로 정제한 결과물이다. 니벨룽의> 소외론>
“한국의 연구자들은 너무 매크로한(거시적인) 방법으로 학문을 해요. 장점일 수도 있지만 무척 위험한 태도입니다. 학자는 이론을 논하기 전에 작은 것에서 정확해야 합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내가 <소외론 연구> 에 ‘관념이 유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불의 내를 건너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했어요. 10년이 지나서야 그게 마르크스가 아니라 포이어바흐의 말이란 걸 알게 됐죠. 원전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아서 생긴, 내 평생의 흠입니다.” 소외론>
정 교수는 <니벨룽의 보물> 을 완성하기 위해 일본과 독일, 네덜란드의 도서관들을 뒤졌다. 마르크스의 육필에 접근해 갈수록, 그는 원문에 근거하지 않은 학문은 결국 사상누각일 뿐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고 했다. 학자들조차도 다이제스트 문화에 익숙해진 한국의 독서 풍토에서, 이 책은 원전 텍스트를 직접 접할 때만 얻을 수 있는 행간을 읽는 기쁨을 전해준다. 니벨룽의>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을 보면 그의 사상에 매우 감성적인 면이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에리히 프롬도 ‘마르크스 사상의 요체는 인간의 진정성을 회복하는 방법이다’라고 했습니다. 혁명론도 결국 사회가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만드니까 생겨난 겁니다. 2차 자료만 봐서는 그런 ‘이모셔널’한 맥락을 이해할 수 없죠.”
몰가치한 이윤 추구가 극에 달한 결과 전 세계 경제가 공황 상태로 치닫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마르크스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 정 교수의 대답은 담담했다. “금융파생상품 같은 것은 사실 마르크스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에요. 현실에 대한 구체적 방법론을 마르크스에서 찾긴 힘들 겁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인간답게 사는 것’의 가치입니다. 그리고 ‘사회에 대한 그의 열정과 희생’이죠. 학자라면 더욱 그래야 합니다.”
■ 심사평 "마르크스·엥겔스 문헌 연구 노학자의 열정·고집 돋보여"
<니벨룽의 보물> 은 노학자의 집념이 돋보이는 서지학적 연구서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긴 문서 형태의 유산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일련의 복잡한 과정을 꼼꼼히 조사했다. 바그너가 니벨룽의 보물을 둘러싼 다양한 사건을 극화했듯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헌적 유산이 여러 세대를 거쳐 전승되는 동안에 벌어진 무수한 뒷이야기들을 재현했다. 니벨룽의>
문서들이 이합집산하는 묘연한 행방들, 문서들의 출판과 관련된 여러 인물들의 헌신과 갈등, 전승 과정마다 문서가 겪어야 했던 역사적 질곡과 기구한 운명이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헌에 바친 한 평생의 연구가 남기는 또 하나의 역작이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고집스러운 학자의 모습은 오늘날의 젊은 인문학도들에게 커다란 귀감이 될 것이다.
김상환ㆍ서울대 철학과 교수
사진 김주영 인턴기자(고려대 언론학부4)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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