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무자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올해 우리 국민들은 경기침체의 우울한 상황에서도 베이징올림픽 영웅들이 있어 잠시나마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골든 보이' 박태환의 수영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 쾌거와 9전 전승으로 '퍼펙트 우승'을 차지한 야구대표팀의 피날레 금메달까지 뜨거웠던 8월 그들이 연출한 17일간의 각본 없는 드라마에 우리는 마냥 행복했다.
그러나 베이징올림픽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베이징 신화의 산파역을 맡았던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대한체육회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간섭으로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스포츠는 굳이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의 거리 응원을 들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국민 통합과 화합에 크게 기여해 왔다.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남북 동시 입장을 이뤄냈고, 남북 선수들이 정정당당한 대결을 통해 동포애를 과시하기도 했다.
프로야구 8개 구단이 회원사인 KBO는 공조직이 아니다. 1982년 권위주의 정부의 주도 아래 출범된 태생적 한계로 인해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KBO 총재 자리가 정치권 인사들이 쉬었다가는 사랑방이 아닌 바에야 지방자치단체장도 민선으로 뽑은 지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낙하산 인사'라는 시대 착오적 발상이 버젓이 횡행하고 있다니 통탄할 노릇이다.
프로야구 사장단은 지난 16일 신상우 전 총재가 사퇴하자 곧바로 유영구 명지의료재단 이사장을 전격 추대했다. 그러자 정치권에서 차기 KBO 총재 자리는 모 전직 국회의원의 몫이라는 소문이 흘러나왔고, 최종 승인 권한을 갖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는 총재 후보를 추대하는 과정에서 '사전논의'가 없었다는 절차상의 문제를 들고 나오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결국 유영구 이사장은 일주일 만에 고사의사를 밝혔고, 차기 총재 선출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당초 이사회를 열어 정식으로 추대키로 했던 KBO 이사회는 '좀 더 덕망 있는 인사'를 추천하기 위한 시간을 갖기로 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의 목소리 일 것이다. 프로야구 사장단과 일선 감독들은 자율총재를 추대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야구를 잘 알고, 야구에 대한 열정이 있는, 야구계에 봉사할 분이 오셨으면 좋겠다"는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정치인이라고 무조건 반대해서도 안되겠지만 국회에서 19세이하 관람불가 폭력 동영상이나 보여주는 현실에서 과연 덕망 있는 인사가 몇 분이나 될지 의문이다.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곳은 비단 KBO만이 아니다. 한국 엘리트 체육을 관장하고 있는 대한체육회는 조직개편을 둘러싸고 폭풍전야다. 대한체육회는 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의 완전 통합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정부는 체육회와 KOC를 분리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KOC를 스포츠 외교를 전담하는 기구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들은 통합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체육회는 "현 체제로도 베이징올림픽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는 등 잘해왔는데 왜 굳이 분리해서 평지풍파를 만들려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경기단체장과 조직개편에 낙하산 인사도 안되고 밀어붙이기식도 곤란하다. 탁상공론만 벌일 것이 아니라 현장 관계자들의 말에 귀를 열어야 한다.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던 그 순간엔 정치권도, 국민들도, 선수도 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여동은 스포츠팀장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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