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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삭풍광야의 공무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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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삭풍광야의 공무원들

입력
2008.12.26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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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거나 움직였다 하면 일을 저지른다는 글(12월 12일자)을 썼지만, 이번엔 공무원들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자. 연말에 갑자기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시작된 고위공무원 물갈이로 관가는 거의 패닉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연말은 원래 인사이동으로 어수선한데, 올해의 경우 세계적 경제위기로 감원과 구조조정의 충격이 심한 터에 공직사회에까지 삭풍ㆍ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인위적 퇴출의 부작용 걱정

고위공무원 물갈이의 목적은 ‘위로부터의 개혁’이라고 한다. 안병만 교과부 장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추진하고 싶은 정책이 있어도 관료들이 엄청난 경험과 기존 지식을 바탕으로 나를 설득해 앞으로 못 나가게 한 적이 있다”며 “이 때문에 관료들과 갈등기류가 형성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관료사회에는 잘 움직이지 않으려는 조직문화가 있어 인사를 통해 조직의 개혁성과 창의성을 높여야 하며, 교과부는 교육부와 과학기술부의 통합에 따른 시너지효과가 거의 없어 조직을 전면 개편하려 한다는 것이다.

교육부에 이어 다른 부처에서도 1급 이상 공직자들의 일괄 사표를 받고 있다. 범 정부 차원의 조치가 아니라지만, 이제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앙부처의 인사태풍은 지자체로까지 확산돼 1급 뿐만 아니라 정년이 가까워진 2~4급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개혁은 당연하며 언제나 필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명색이 무엇이든 퇴출 대상자들로서는 억울할 일일 것이다. 공무원이 좋은 것은 신분 보장인데, 하루 아침에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는다면 억울하지 않을 리가 없다. 사람을 바꿔야 한다면 ①부처별로 뚜렷한 이유와 명분 ②각 개인이 납득할 만한 기준 ③전임자보다 나은 후임자 임명, 이런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그런데 일부 지자체의 경우 나이를 기준으로 무 자르듯 할 기세여서 반발을 사고 있다.

고위공직자 물갈이에서는 이념쟁투의 냄새가 난다. 물갈이가 교육정책과 역사교육의 주무 부서인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안 장관의 언급이 그 배경을 잘 설명해 준다.

그러나 공무원들이 사실 무슨 잘못과 죄가 있나. “공무원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말이 올해 초 화제가 됐지만, 사실 공무원들은 대통령과 정권의 통치철학과 이념에 맞춰 일했을 뿐이다. 공직사회 좌파 득세의 실상에 어둡다고 비난할지 몰라도 공무원은 쓰기 나름이다.

국방부가 추진해온 대체복무제의 경우, 전 정권 시절인 작년 10월 설문조사에서는 찬성률이 85.5%였는데, 최근 조사에서는 반대가 68.1%로 훨씬 더 많았다. 조사대상자는 물론 다르지만 이를 근거로 “국민적 합의가 부족하다”며 이미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대체복무제를 유보하려 한다니 우스운 일이다. 행정의 연속성도 문제지만 그 제도를 추진한 공무원들은 징계나 불이익을 받아야 하나. 설문조사는 응답자와 설문 구성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진다. 그 제도를 못마땅해 하니까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전임자보다 나은 후임자를 선임해야 한다는 세 번째 원칙에 관한 문제다. 이 부분이 제대로 될 것 같지 않다. 올해 임명된 정부 산하 모 재단의 이사장은 ‘나는 장관급인데 겨우 이런 자리에 왔다, 나는 더 좋은 자리로 가야 할 사람’이라는 투의 언동으로 실망을 샀다. 전임자가 조언을 해 주려고 찾아갔다가 그의 오만에 놀라 그냥 왔다는데, 이런 사례를 볼 때 정부 부처라고 인사가 제대로 될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정권 바뀌면 또 벌어질 현상

일이 어떻게 진행되든 일괄적으로 인위적 물갈이를 하고 나면 나중에 정권이 바뀐 뒤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질 것이다. 설령 성격이 비슷한 정권이 들어선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을 키우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 고질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교장이 훌륭하면 그 학교가 좋아지듯이 장관과 기관장에 제대로 된 사람을 기용하면 그 부처와 기관이 달라질 수 있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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