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달력은 무엇인가. 샤방샤방한 연예인의 얼굴을 1년 내내 들여다볼 수 있는 화보인가. 치열한 1년을 기록한 작업일지인가.
국내에서 1년에 8,000만부가량이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달력. 달력은 날짜를 알려주는 기본 기능을 넘어 당신의 사회적 지위와 취향과 욕망과 교양까지 담아낸 지 오래다.
누군가는 집에 들어온 달력 개수를 통해 사회적 신분을 가늠하고, 어느 회사는 고가의 달력을 제작해 회사의 품격을 뽐내기도 한다. 하루종일 어디를 가나 대면하는 달력에 대해 당신이 알거나 모르고 있는 이야기들을 전한다.
■ 달력은 브로마이드다
"달력 사면 통닭 하나 준다." "소녀시대 달력을 구매했습니다. 그런데 사은품으로 닭을 주더군요."
최근 인기그룹 '소녀시대' 달력을 사은품으로 증정하고 있는 굽네치킨의 인기를 반영한 인터넷 게시판의 글들이다. 과장이 너무 심하다고? 천만에. 비매품인 소녀시대 달력이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거래가 되는 상황을 알면 이 글들을 과장된 우스개로 치부하기 어렵다.
굽네치킨의 가장 싼 메뉴는 1만3,000원이고, 소녀시대 달력의 거래 가격은 7,500~8,000원이다. "달력에 치킨이 따라온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소녀시대 달력엔 법정공휴일 표시는 없고, 소녀시대 멤버들의 생일만 표기돼 있다. 달력의 본질적 기능보다 화보 성격을 더 강조한 것이다.
해외에선 눈이 더욱 휘둥그레질 일이 있다. 일본엔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배용준 달력이 인기다. 매년 벽걸이 달력 5만개와 탁상용 달력 3만개가 기본으로 팔린다.
벽걸이 달력과 탁상용 달력이 개당 2,625엔과 1,575엔이니까 '욘사마 달력' 만으로 최소 1억7,859만엔(약 26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배용준의 소속사 BOF 관계자는 "일본 팬들이 1년 내내 볼 수 있는 브로마이드로 생각해 구입한다"고 밝혔다.
■ 달력은 욕망이다
흔히 '맥주집 달력'이라 불리는 주류업체 달력은 전통적으로 남성들을 위한 볼거리의 기능이 강하다. 비키니를 입은 여자 모델의 야한 자태를 실어 주요 술 소비자인 남자들의 시각적 욕망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2009년도 예외는 아니다. OB맥주는 레이싱 걸들을 달력 모델로 내세웠고, 하이트맥주도 비키니를 입은 외국 모델이 달력 공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김기화 OB맥주 홍보팀장은 "맥주집에 걸리는 달력은 좀 야해야 된다는 기대치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며 "업소들의 의견을 달력 제작에 반영한다"고 말했다.
최용운 하이트맥주 홍보실 대리는 "업소에서 좀 더 화끈하게 만들어 달라고 간혹 요구하기도 한다"며 "그러나 회사끼리 벗기기 경쟁을 하려는 의식은 없다"고 말했다.
야한 달력의 간판 주자였던 소주업체 달력은 최근 분위기를 바꿔 가고 있다. 진로는 지난해부터 여체 대신 자연 풍광을 내세우고 있다. 진로 관계자는 "깨끗하고 깔끔하다는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독도와 낙동강 등 자연 사진을 사용하고 있다"며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비판도 달력 디자인 교체에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 달력은 생활이다
달력이 생활의 다른 이름인 경우도 많다.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일기가 되기도 하고, 일정 관리를 보조해 주는 훌륭한 비서가 되기도 한다.
경기 안산에 거주하는 안인선(35)씨는 탁상용 달력을 다이어리로 활용한다. 소설책 두께의 다이어리는 값이 비싼 데다 거추장스럽다는 이유에서다. "메모를 하기에 공간이 적당하고 계획을 짜기도 편리합니다. 탁상용 달력 3개면 회사 일과 가사, 육아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됩니다."
농촌에서 달력은 한 해 농사를 의미한다. 그날그날의 작업량과 날씨를 기록하면 그 다음해 농사를 위한 참고자료가 된다. 시골에서 여전히 인기 있는 '일력'(日曆)은 예전만 못하지만 화장지 대용으로 아직 재활용되고 있다.
각 대학에서 달력은 학사 관리를 의미한다. 대학본부가 배포한 달력의 표기를 통해 학생들은 수강 신청을 하고, 시험 준비를 하고, 방학을 맞이한다. 김태성 중앙대 홍보팀장은 "달력을 만들 때 디자인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지만 학사 관련 표기가 잘못 기재되거나 빠지지 않았는지를 가장 신경 쓴다"고 말했다.
우크나이나에서는 '성냥 달력'을 판매하고 있다. 날짜와 요일이 표기된 성냥개비가 달마다 일 수만큼 붙어 있다. 하루를 의미하는 성냥개비 하나로 촛불을 켜거나 담배 한 대를 피는 것, 왠지 비효율적인 듯 하면서도 낭만적이지 않은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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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中 설날 달라지는 역법의 비밀 아세요
1997년 설 하루 전인 2월 7일 부산에서 무역업을 하는 A씨는 설 연휴에 앞서 중국에 화물을 보내려 부랴부랴 배를 띄웠다. 하지만 중국에 도착한 A씨의 배는 짐을 내리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하루 빠른 2월 7일이 설날이어서 모든 항구가 휴무에 들어갔던 것. A씨는 우리나 중국이나 같은 음력을 쓰는데 어떻게 설날 날짜가 틀릴 수 있느냐며 기막혀했다.
여기에 날짜를 따지는 역법의 비밀이 숨어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이 같은 음력(정확히 말하면 태음태양력)을 쓰는 것은 맞다.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삼는 음력의 1일은 합삭(合朔)이 일어난 날 즉 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위치하는 순간을 포함하는 날이다.
그런데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늦은 표준시를 채택하고 있어 1997년 우리나라에서는 2월 8일 0시 직후 합삭이 일어난 반면, 중국에서는 2월 7일 밤에 합삭이 일어난 것이다. 같은 이유로 2027년 설날도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하루 늦다.
음력은 태양의 운동을 따르는 양력보다 계산이 훨씬 복잡하다. 합삭은 달이 눈에 보이지 않는 때이고, 과거에는 계산으로 정확히 알아내기도 어려워 오차를 냈다. 이슬람권에서는 초승달이 처음 보이는 날을 음력 1일로 치기도 했다.
지금은 미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JPL)가 전세계의 천체 관측치를 통계 처리해서 세계 각국에 정보를 제공하면, 우리나라 한국천문연구원이 이를 재확인해 합삭 시간을 밝힌다.
우리나라는 세종 시대인 1442년 각각 중국과 이슬람권의 역법을 토대로 한 칠정산내편과 칠정산외편을 편찬, 독자적인 역법을 갖추었다. 그러다 고종 때인 1896년 양력(태양력)을 쓰기 시작했다.
4년마다 윤일(2월 29일)을 넣되, 100년으로 떨어지는 해는 평년, 400년으로 떨어지는 해는 다시 윤년으로 정해 1년의 평균 길이를 365.2425일로 만든 그레고리력이다. 그런데 양력에 낯선 우리나라는 평년이어야 하는 1900년을 윤년으로 착각, 2월 29일을 넣은 해프닝도 있었다.
그레고리력 1년의 길이는 실제 지구가 태양 주위를 정확히 한 바퀴 도는 태양년 1년의 길이와 26초(0.0003일)의 오차가 있다. 율리우스력보다는 훨씬 정확한 것이지만 여전히 3,300년마다 하루를 빼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천문학자들은 여러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서기 4800년경에야 닥칠 문제를 말이다.
●도움말 안영숙 한국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그룹장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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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로 달력골목 세밑 "이곳선 벌써 2010년 맞을 준비"
"쏜살세월 불황도 싣고 갔으면… "
쏜살같은 세월을 윤전기로 찍어내는 곳이 있다. 서울 중구 명보극장 뒷편의 '달력 골목'이다. 을지로 3가와 충무로 사이, 작은 봉고차 한 대도 지나가기 힘든 좁은 골목에 '00 카렌다' 간판을 내 건 15평 남짓한 달력 업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미로처럼 연결된 좁은 골목에 줄잡아 30여개 달력 제작 업체가 모여있다. 가게마다 비키니를 입은 여자 사진을 박은 달력부터 산수화나 풍경을 담은 달력 등 수십여 종에 이르는 다양한 달력을 전시하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일년을 먼저 사는 사람들
"우리는 남들보다 1년 앞서 사는 사람들이죠." 이곳 달력 업체 사장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달력의 제작이 연초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연말만 되면 벌써 후년의 달력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태평 카렌다 김영언(57) 사장은 "내년 행사 등을 미리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세월을 빨리 준비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달력은 1월부터 서서히 준비를 시작해 7,8월에 그림을 넣고 판을 짜는 등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간다. 11월 10일부터 한 달 간이 주문이 가장 많이 들어와 1년 중 제일 바쁜 때다. 이 기간에 본격적으로 인쇄 공장이 돌아가는데, 서너 명이 조를 짜서 24시간 기계를 돌린다.
올해 주문 달력을 거의 끝낸 유진 카렌다 오병주(37) 부장은 "2009년이 되면 2010년 달력을 가지고 또 한 해를 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 달력에도 트렌드가 있다
엇비슷해 보이지만 달력에도 트렌드가 있다. 추억의 달력 중 하나가 매일 한 장씩 찢는 일력이다. 종이가 귀했던 시절, 화장지 대용으로도 각광을 받았던 일력은 점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귀차니즘' 때문이다. 동성카렌다 신 사장은 "요즘 사람들이 찢는 걸 귀찮아 해서 그런다"고 일갈했다. "한 달에 한 번 넘기는 것도 귀찮아 요즘은 석 달이 한 장에 있는 달력이 인기"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달력에도 해마다 유행이 있다. 최근 2~3년 간은 '웰빙' 컨셉의 달력이 대세였다. 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달력에도 반영된 것이다. 유행과 상관없이 언제나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도 있다. 바로 숫자판 달력이다.
신 사장은 "별다른 그림 없이 커다란 숫자만 써 있는 이 달력은 가격이 가장 저렴하고 무난해 노년층이나 지방에 단골이 많다"고 했다. 돋보기 안경을 쓰지 않고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경기 불황의 그늘
불황의 늪은 달력 골목도 피해갈 수 없었다. 모두들 '죽겠다'는 말뿐이다. 중앙 카렌다의 권상희(42)씨는 "판매 부수가 30% 줄었다. 10여년 동안 일했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기 불황으로 기업마다 홍보비를 줄이면서 달력업계에도 그 타격이 미친 것이다. 신 사장은 "특히 건설업계와 여행사의 주문이 가장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올 한 해 건설업계와 여행사가 제일 힘들었다는 반증이다.
기업들의 달력 제작이 줄자, 낱개로 달력을 사러 오는 손님이 늘었다. 정정태(70ㆍ인쇄업)씨는 주인에게 "금년엔 달력 나눠 주는 사람도 없어"라고 투덜대며 숫자판 달력 2개를 집어 계산했다. 정씨는 "근 30여년간 매년 달력 5,6개씩은 들어왔는데 이렇게 돈 주고 달력을 사게 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달력 골목 분위기도 썰렁하다. 셔터 문을 내리고 '임대 문의'를 써 붙인 가게도 곳곳에 눈에 띈다. 힘든 한 해를 보낸 달력 골목 사람들. 새해 소망을 묻자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부디 경기가 좋아져, 돈도 돌고 윤전기의 달력도 힘차게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강유진 인턴기자(이화여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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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어빵 달력'은 NO! 맞춤형 개성달력 만들어봐요
주말 인기 TV 프로그램 '무한도전'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달력 만들기에 도전했다.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등 무한도전 멤버들은 수족관에 얼굴을 담그고, 온몸에 파란색 물감을 칠해가며 그들만의 달력 제작에 나섰다. 이들이 생고생을 해가며 만든 2009 무한도전 달력은 이미 예약 주문이 50만부를 훌쩍 넘길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
'바보스러운' 무한도전 멤버들도 만들 수 있는 '나만의 달력'. 은행이나 대기업, 사찰에서 주는 판에 박힌 달력에 싫증이 난다면 특별한 달력 만들기에 도전해보자. 매일 봐야 하고, 소중한 스케줄을 관리해 주는 달력에 자신만의 기억과 개성을 색칠할 수 있는 작업이다.
인터넷에서 '달력 만들기'를 검색해보면 스탑북(www.stopbook.com), 올인포토(www.allinfoto), 스냅스(www.snaps.co.kr), 스마일캣(www.smilecat.com), 포토몬(www.photomon.com), 디피매니아(www.dpmania.com) 등 수 많은 업체들의 주소가 떠오른다.
대부분 사진 인화나 포토북 등을 함께 취급하는 곳이다. 스탑북의 경우 자신만의 사진과 그것에 얽힌 사연을 함께 엮어 만드는 맞춤형 달력을 내놓는다. 각 페이지에 원하는 사진을 넣고 좋아하는 문구, 사진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적어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고 기념일이나 휴일도 직접 추가할 수 있다.
이들 업체는 다양한 레이아웃과 손쉬운 사진 꾸미기 양식을 갖추고 있다. 싸이월드나 블로그로 사진 편집을 해본 경험이 있다면 달력 꾸미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다양한 사례를 검색해 마음에 맞는 것을 골라 사진을 새로 올리기만 하면 된다.
첫 만남일, 100일, 첫키스한 날 등 연인만의 기념일을 넣어 만든 '연인 달력'이나 가족 생일, 집안 제사 등을 표시한 '가족 달력' 등이 인기다.
5년째 가족 달력을 꾸미고 있는 김경희(36ㆍ회사원) 씨는 "가족 달력이 책상의 한 자리를 차지한 이후 생활 자체가 가족 중심으로 바뀌게 됐다"고 했다. 김씨의 가족 달력 만들기 노하우는 달력을 지난 1년의 기록으로 꾸미는 것이다.
1월의 둘째 돌 사진으로 내년 1월의 달력을 장식하고, 3월에 찍은 가족 소풍 사진으로 2009년 3월을 여는 식이다. 달력을 통해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 등 가족의 변화를 쉽게 알 수 있게 된다.
김씨는 한 번에 10부 정도 달력을 만든다. 가족과 나누고 남은 1,2부 정도는 꼭 소장용으로 남겨둔다. 자녀들이 컸을 때 지난 날의 멋진 기록을 담은 앨범으로 선물하기 위해서다.
나만의 달력 만들기 가격은 크기와 디자인에 따라 1부에 1만~3만원 정도다. 3만원 이상 주문 시 배송료는 무료다. 주문 후 24시간 안에 제작도 가능하다. 배송이 밀려 있어도 집에서 받아보기까지 3,4일이면 충분하다.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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