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에 자폐증을 앓고 있는 친구가 있어요. 소민이는 배를 너무 좋아해서 주말마다 월미도에서 무의도, 영종도 가는 배를 타러 다녀요. 소민이에게 배 모형이라도 선물하고 싶어요. 꼭 부탁해요. 산타클로스 아저씨."
인천 산곡동 대정초등학교 5학년 2반 손원혁(11)군의 올해 성탄절 소원이다. 손군은 지난 17일 이런 소원을 또박또박 편지에 적어 사회복지법인 협성원 산하 부평사회복지관의 '산타 소망 우체국'에 보냈다.
'산타 소망 우체국'은 장애인이나 노인, 아동 등 어려운 이웃들의 소원을 받아 선물을 전하는 행사다. 3년째인 올해 행사에는 무려 1,200여건의 소망 편지가 날아들었다.
배소민양을 위해 편지를 쓴 친구는 손군만이 아니었다. 같은 반 전지예양은 "소민이는 지금도 키가 큰 편이지만 더 크기를 바라니 키 높이 신발을 선물해 주세요"라고 적었고, 이다정양도 같은 이유로 '키 잘 크는 건강식품'을 주문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같은 반 친구 5명이 똑같이 소민이를 위한 소망 편지를 쓴 사실을 뒤늦게 알고, 부모들도, 선생님도 놀랐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이 어여쁜 친구들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산타 언니, 오빠들이 떴다. 복지관은 접수된 사연 중 100건을 뽑아 선물을 보냈는데, 아주 특별한 11건은 이날 사회복지사들이 산타 복장을 하고 직접 주인공을 찾아가 선물을 전달했다.
"어, 산타다!" "산타 할머니도 있네." 방학식을 마친 이날 오후 대정초교 5학년 2반 교실에 20명의 산타클로스가 한꺼번에 들이닥치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모형 배 선물을 받아든 소민이는 연신 "친구들아 정말 고맙다"며 환하게 웃었다.
아쉽지만 지예가 바랐던 '키 높이 신발' 선물은 전달되지 않았다. 복지관 예산과 인천시 보조금 등 900만원으로 치르는 행사라 한 사람에 여러 가지를 선물할 여유는 없기 때문이다.
산타들은 대신 키 작은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짤막한 연극을 선사했다. 키 큰 산타클로스가 어린 아이 하나 들어갈 정도로 작은 굴에 빠뜨린 장갑을 키 작은 산타클로스가 주워준다는 내용이었다.
담임교사 박찬(38)씨는 "어린 나이에 주변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는 진정한 성탄절 정신을 실천한 아이들이 자랑스럽다"면서 "우리 반 학생 27명이 이렇게 남을 배려하는 어린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소민이 덕"이라고 말했다.
소민이 어머니 김서운(46)씨는 "여러모로 부족한 소민이를 돌봐주고 사랑해주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잘 지내준 친구들과 부모님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날 산타클로스로 활약한 이들은 복지관 소속 사회복지사 10명과 한서대, 조선대, 계명대 등 16개 대학 사회복지학과 학생 70명. 이들은 20명씩 4개 조로 나뉘어 11곳을 찾았다.
'제2의 김연아'가 꿈인 여덟 살 소녀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스케이트를 사주지 못해 가슴 아파 했던 엄마의 소원대로 스케이트를 갖게 됐고, 자신도 어려우면서 폐품을 모아 팔아 이웃을 돕고 있는 할머니는 마음 따스한 이웃의 청으로 찜질기를 선물 받았다.
장애아 교육시설 인천혜광학교, 저소득층 아동복지시설 간석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도 푸짐한 선물과 함께 산타클로스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아주 특별한 성탄절 추억을 만들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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