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와 같은 좁은 골목길. 포장도 안된 도로 양쪽으로 2평 남짓한 쪽방들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자동차 한대가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을 따라 조심스레 5분쯤 들어가니 더 이상 옴짝달싹 하기 어려운 막다른 공간이다. 부산의 달동네로 불리는 강서구 대저1동. 서정자(75) 할머니가 홀로 살고 있는 2평짜리 쪽방을 찾아가는 길이다.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의 자선봉사단체 ‘유틸피아’의 김완태 대리, 강서구종합사회복지관 김희선 사회복지사와 함께 차에서 내려 구불구불한 길을 몇분 더 걸어가니 대문도 없는 집이 나타난다. 반쯤 열린 유리문을 두드리자 40대 아주머니가 “할머니! 서울서 손님 왔어요”라고 들뜬 목소리로 외친다. 정기적으로 할머니 집을 찾아 청소, 요리 등의 봉사활동을 하는 가사 도우미 아줌마다.
방에 있던 할머니가 사람 하나가 겨우 설만한 좁은 부엌으로 엉금엉금 기어 나오며 명절날 자식과 손자들이 찾아온 듯 반갑게 맞는다. “누가 왔다고, 나 보러 서울에서 손님이 왔다고! 아이고 날씨가 추우니 어서들 방으로 들어오게.”
천장이 낮아 머리를 숙인 채 방으로 들어서니, 외부의 누추한 모습과는 판이하게 도배와 장판 등이 여느 살림집 못지않게 청결하다. 김 복지사가 “할머니 방이 너무 좋아요. 신혼집 같네요”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좋은 분들이 와서 다 고쳐줬어”라며 환하게 웃는다.
그러자 김 복지사가 “그 분들 중 한명이 바로 이 분이에요”라며 유틸피아 총무를 맡고 있는 김 대리를 가리킨다. “아이고 고마워요. 어떤 분들이 고쳐줬는지 인사라도 하려 했는데, 몸이 불편해 거동을 할 수가 있어야지.” 할머니가 반색하며 연신 머리를 숙인다. 김 대리는 할머니의 감사 인사에 얼굴이 붉어지며 같이 머리를 조아린다. “할머니, 무슨 인사를 해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정겨운 광경에 추웠던 몸이 봄 눈 녹듯 풀리며 몸과 마음이 훈훈해진다.
유틸피아의 도움을 받기 전까지 만해도 서정자 할머니의 집은 남루하기 그지없었다. 벽지가 다 찢겨나가 시멘트 벽이 그대로 드러났고 장판도 너무 오래돼 곳곳이 헤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자식들이 있어 사회복지단체의 도움을 받기가 힘들었다. 이런 딱한 사연을 알게 된 김 복지사가 유틸피아 회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들이 흔쾌히 동의해 할머니 집을 고쳐준 것이다.
유틸피아는 회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성금으로 벽지와 도배, 전선 등을 직접 구입해 할머니 집을 정성스레 새집처럼 다듬고 고쳤다. “여름에 할머니 집에 왔을 때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정말 보람된 일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김 대리가 당시를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는 당뇨 합병증으로 거동이 불편하다. 주변의 도움 없이는 걷는 것은 물론이고 소변 보는 것조차 힘들다. 방 안에서 두꺼운 양말을 두 개나 껴 신을 정도로 손발도 차갑다.
문득, 몸이 이토록 불편한 할머니가 자식들 도움 없이 사는 사연이 궁금해졌다. 자식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내자, 할머니가 곁에 두었던 담배 한대를 꺼내 물었다. “젊은 손님들한테 미안한데, 나 담배 한대만 피우고 말할게. 의사선생님이 담배 피우지 말라고 하는데, 가슴이 답답할 때 이거라도 없으면 못살 것 같아.” 담배를 피는 할머니 모습이 측은하다.
“3남1녀를 뒀는데, 장애자도 있고, 다 생활이 넉넉치 못해. 자식들도 살기가 벅차니 어쩌겠어.” 자식들 처지가 안쓰러운지, 할머니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허공을 응시한다. 그간 자식들에게서 도움을 받기는커녕, 할머니가 오히려 손녀 2명을 키웠다고 한다. 지금은 모두 장성해 할머니 곁을 떠났지만, 이 쪽방에서 네 살과 다섯 살짜리 연년생 손녀를 60대부터 홀로 돌봤다. “당시 남의 집 농사를 지어준 품삯으로 손녀 둘을 키웠어.
애들이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고 눈물을 흘릴 때면 가슴이 어찌나 미어지든지….” 할머니가 흘러내리는 눈물을 연신 훔쳐내며 말을 잇는다. “애들이 자장면 먹고 싶다고 조를 때가 가장 마음이 아팠지. 없는 돈에 사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애들 기 죽일 수도 없고. 열번 조르면 한번은 중국집에 갔어. 돈 아끼려고 애들 것만 두 그릇 시켜주면, 큰 손녀가 말없이 빈 그릇을 가져와 할머니 드시라며 덜어줄 정도로 애들이 착했어.”
이 동네에는 서정자 할머니와 같은 독거노인들이 많이 산다. 대부분 보증금 없이 월세 5만원, 10만원짜리 쪽방에서 정부 보조금으로 근근히 살아간다. 김 복지사는 “월세가 워낙 싼 집들이다 보니 환경이 열악할 수 밖에 없다”며 “유틸피아 회원들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틸피아는 1997년부터 이 지역에서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집을 고쳐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 동안 도배를 하거나 전기시설 등을 고쳐준 집만 수백 채에 달한다. 김 대리는 “한 달에 한 번씩 수리해줄 집을 선정해 회원들과 함께 봉사하고 있다”며 “주민들이 깨끗하게 바뀐 집을 보고 웃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내 자신이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 르노삼성의 사회공헌
유틸피아 회원들은 매달 봉사활동 나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회사가 강요해서 하는 형식적인 봉사가 아니라, 본인들이 자원해서 하는 봉사이기에 더욱 열성적 일 수밖에 없다. 활동 자금도 50여명 회원들의 순수 회비로 마련한다. 자신들도 많지 않은 봉급에 살림이 넉넉치는 않지만,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그 행복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유틸피아는 1997년 10월 부산공장 공무팀 직원들이 설립한 봉사단체. 매달 1인당 5,000원의 회비를 모아 부산 강서구 일대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집을 고쳐주고 있다. 회원 대부분이 도배나 전기시설 경험이 있어, 손수 재료를 구입해 매달 한번씩 시간을 쪼개 봉사활동에 나선다. 이들이 그 동안 집을 고쳐준 소외계층만 250여 가구에 달한다. 총무를 맡고 있는 김완태 대리는 "막상 현장에 가보면 고쳐주고 싶은 게 한 없이 많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것을 다 해주지 못해 못내 아쉽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차도 회사 차원에서 다양한 나눔 활동을 벌이고 있다. 르노삼성의 사회공헌 활동은 크게 ▦문화예술지원 ▦어린이교통안전 ▦기타 공익사업 세 가지로 나눈다. 문화예술지원 사업은 음악, 미술, 공연, 전통문화, 한불 문화교류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 후원과 우리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사업.
어린이교통안전은 교통사고에 취약한 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교육에 역점을 둔다. 기타 공익사업은 미래 자동차 전문가들을 양성하기 위해 전국 자동차 관련 학교에 차량, 엔진 및 변속기 등 교ㆍ보재 지원 및 소외계층 돕기 등이다.
저소득층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문화 경험을 제공하는 '문화기부 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특히 2003년부터 먹거리나누기운동협의회 등 사회복지 단체들과 함께 시행해온 '꿈과 사랑의 문화나눔 축제'는 문화의 사각지대에 놓인 어린이들에게 소중한 공연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달 21일에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100여 명의 어린이들을 초청,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관람했다. 2004년부터 부산ㆍ경남 지역 소재 복지시설에 문화예술 강사를 파견, 초등학생들의 현장학습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부산=유인호 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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