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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골방서 14년… '잠들지 못하는' 유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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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골방서 14년… '잠들지 못하는' 유골들

입력
2008.12.26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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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송 구멍 난 대퇴골, 아래턱이 유실된 두개골, 곰팡이로 새파랗게 변색된 상악골…. 콘크리트 바닥은 물론 철제 선반에도 여기저기 훼손된 유골들로 가득 채워진 박스와 자루가 널려 있다. 23일 찾은 서울 종로구 서울대 법의학센터 1층 시체 부검실 옆 19㎡(6평) 남짓한 '유골 보관실'엔 유해 157구가 14년째 '임시 보관' 중이다.

유해의 주인은 1950년 10월 일어난 '고양 금정굴 사건' 희생자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점령시기에 부역한 혐의가 있는 사람들을 경찰이 총살해 암매장 한 사건이다. 1995년 유족들은 유해를 직접 발굴, 신원 확인을 위해 이 곳으로 옮겨왔다. 하지만 당국의 무관심으로 유해는 신원을 밝히지도, 편히 쉴 곳을 찾지도 못한 채 계속 방치됐다.

지난해 6월 진실화해위원회가 이 유해들이 금정굴 사건 희생자임을 공식 확인하고 "명백한 국가의 범죄 행위인 만큼 영구봉안 시설 마련하라"고 권고했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한국전쟁 와중에 일어난 민간인 집단학살 희생자들의 유해가 속속 발굴되고 있지만, 어렵게 햇빛을 본 1,337구의 유해는 당국의 무관심과 관련 법규의 미비로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민간 주도로 발굴된 유골은 모두 404구로, 4년에서 길게는 14년째 방치돼 있다. 금정굴 희생자 외에 보도연맹 사건으로 희생된 경남 마산시 여양리 유골 167구(2003년 발굴)는 경남대 박물관 옆 컨테이너, 경북 경산 대원골 유골 80구(2005년 발굴)는 코발트광산 인근 컨테이너에 임시 보관 중이다.

진실위가 지난해부터 발굴한 유골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진실위는 충북대 유해감식센터에 임시 유해안치 시설을 마련, 충북 청원 분터골 등 6곳에서 발굴한 유해 933구를 보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곳의 유해도 3년 무상안치기간이 끝나는 2011년 8월 이후엔 갈 곳이 없다. 발굴 속도를 고려하면 2,000구 가량을 안치할 수 있는 공간도 넉넉지 않다.

학살 희생자들의 유해가 쉴 곳을 찾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는 유해 발굴 및 안장에 관한 법률이 마련돼 있지 않아서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기본법'은 과거사연구재단을 만들어 위령 사업 등을 '논의할 수 있다'고만 규정돼 있어 구속력이 없다.

또 진실위가 '조사' 기관인 한계 탓에 '유해 영구 봉안 조치' '평화공원이나 위령시설 설립' 등을 정부나 지자체에 권고해도 말 그대로 '권고'에 그친다. 현재 상태로 2010년 4월 진실위 활동시한이 끝나면 희생자들의 넋이 위로 받을 길이 영영 사라지게 된다.

유족들은 애만 탈 뿐이다. '금정굴 사건' 희생자 이병희씨의 며느리 이경숙(62)씨는 "설, 추석에 서울대병원을 찾을 때마다 눈물이 쏟아진다. 어느 유골이 아버님인지도 모른 채 언제까지 부검실 옆에서 제사를 모셔야 하나"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춘열 금정굴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국가에 의해 분명히 진실이 밝혀진 사건이니 당연히 국가에서 평화공원 조성 등 책임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양리 사건 유해 발굴을 주도한 이상길 경남대 교수는 "유해 안치 문제는 이념을 떠나 인간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면서 "외국처럼 '평화공원'에 유골을 안치해 반(反) 평화의 상징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재용 기자 jyjang@hk.co.kr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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