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한국 미술계에는 온통 우울하고 화나는 소식뿐이었다. 박수근의 '빨래터' 위작 논란, 삼성그룹 비자금 특검 등 연이은 악재가 터지며 미술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진 가운데, 경제위기의 여파까지 덮쳐 미술시장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국내 최다 관람객 기록을 세운 한국일보사 주최 '불멸의 화가-반 고흐' 전이 미술을 사랑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올 한 해 미술계를 돌아본다.
■ '빨래터' 위작 논란 : 법원 재감정 앞둬… 신뢰도 타격
2008년 미술계는 '빨래터'로 시작해 '빨래터'로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액인 45억2,000만원에 팔린 뒤 올해 초 잡지사 아트레이드의 의혹 제기로 시작된 '빨래터' 위작 논란은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의 진품 판정, 서울옥션의 30억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서울대와 도쿄예대의 과학감정 결과 진품 판정, 최명윤 명지대 교수의 과학감정 조작 주장, 서울대의 과학감정 진상조사 및 담당자 징계 등으로 끝간데 모르고 이어지며 해를 넘길 전망이다.
법원이 주관하는 재감정을 앞두고 있는 '빨래터' 사건은 한국 미술계에 대한 신뢰 자체에 큰 손상을 입혔다.
■ 반 고흐 열풍 : 82만명 관람 국내 최다기록
올해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화가는 반 고흐였다. 한국일보사와 서울시립미술관 공동 주최로 지난해 11월 24일부터 올해 3월 16일까지 열린 '불멸의 화가-반 고흐' 전에는 무려 82만명의 관람객이 찾아와 국내 최다 관람객 기록을 세웠다.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과 크뢸러뮐러미술관에서 대여한 65점의 작품 리스트에는 '자화상'과 '아이리스',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 같은 대표작들이 대거 포함돼 기존 전 세계의 여느 반 고흐 전시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 신윤복 신드롬 : 소설·드라마·영화로 폭발적 관심
전반기에 반 고흐가 있었다면 후반기에는 조선 후기 풍속화가 신윤복이 있었다. 소설과 드라마로 만들어진 '바람의 화원'과 영화 '미인도'까지, 대중매체들이 신비에 싸인 신윤복의 삶을 재조명한 가운데, '미인도'와 '단오풍정' 등 신윤복의 대표작이 대거 나온 간송미술관의 가을 전시에는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신윤복을 남장여자로 그리는 등 허구적 설정이 역사 왜곡 논란을 낳기도 했지만, 신윤복과 조선시대 풍속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촉발시켰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 반토막 경매 : 경매낙찰률 50%대로 '뚝'
지난해 절정을 맞았던 미술시장의 호황은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산산조각이 났다. 특히 미술시장 성장의 중심에 섰던 경매시장의 침체가 이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신생 경매사들은 사업을 보류했고, 80%에 이르던 경매 낙찰률은 하반기 들어 50%대로 뚝 떨어졌다. 지난해 1,926억원이었던 경매시장 규모는 올해 1,149억원(서진수 강남대 교수 통계)으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양대 경매사인 서울옥션과 K옥션은 홍콩와 마카오로 진출,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섰다.
■ 미술관의 부진 : 관람객 줄고 '개점휴업' 까지
국내 대표 미술관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한 해였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최대의 사립미술관인 삼성미술관 리움의 관장이 현재 모두 공석이다.
코드 인사로 지목돼 새 정부의 사퇴 압력을 받았던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마르셀 뒤샹의 작품 '여행용 가방' 구입 논란으로 해고됐다. 관람객 수는 줄었고, 눈에 띄는 기획전도 없었다.
삼성그룹 오너 일가가 비자금으로 고가 미술품을 샀다는 의혹 속에 미술계 파워 1위 홍라희 관장이 물러난 리움은 기획전을 중단한 '개점휴업' 상태이며, 로댕갤러리도 휴관 중이다. 내년에도 기획전 계획은 없어 전시공간과 작품구매처를 동시에 잃은 한국 미술계의 시름이 깊다.
■ 미술품 양도세 부과 : 2011년부터 시행… 시장위축 우려
1990년부터 꾸준히 입법이 추진됐지만 미술계의 반발로 시행이 연기됐던 미술품 양도세 도입 법률안이 논란 끝에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에 따르면 2011년부터 6,000만원이 넘는 미술품의 양도차익에 세금이 매겨진다(국내 생존작가의 작품은 제외).
집단 휴업까지 해가며 양도세 부과에 반대했던 화랑과 미술단체들은 거래 실명화로 인해 시장이 더욱 위축될 것이라며 크게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오히려 미술시장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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