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학계의 흐름은 현실의 격동에 의해 추동된 측면이 강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졸속 협상으로 불붙은 촛불정국은 이른바 '다중지성'이라는 개념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역사 교과서와 건국 논란은 보혁 이념 갈등에 새로운 전선을 제공했다.
하반기에 본격화한 경제위기는 발호하던 신자유주의의 힘을 빼면서 사장된 듯했던 케인즈와 마르크스를 새롭게 조명하게 만들었다.
성리학 이기론(理氣論)의 틀에 빗대 표현하면, 올해는 기발이승(氣發理承)의 한 해였다. 현실(현상계)의 주도적 움직임 위에 이론(본체계)의 변화가 올라탄 형국이었다.
■ 촛불, 다중지성의 탄생 : 새로운 대중 성격 규명 분주
학계를 흔든 가장 큰 이슈는 역시 촛불이었다. 정치적 저항으로 타오른 촛불은 한국의 여러 사회적 담론을 비추며 학자들에게 새로운 사유의 틀을 요구했다.
2008년 대중은 더 이상 계몽과 선동의 대상이 아니었고 학계는 이들의 급격한 진화에 우왕좌왕했다. 가을과 겨울에 발간된 계간지들과 잇달아 열린 학술대회는 뒤늦게 새로운 대중의 성격을 규명하느라 분주했다.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서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자유로운 교통의 주체가 탄생했다. (이들은) 개방적 소통을 통해 공통점을 지니지만 결코 균일하지 않은 '집단적 개인성'을 갖고 있다"고 인식했다.
"지식인과 대중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고 대중이 '중간적 지식인'으로 상승했다"(원용진 서강대 교수)는 진단도 있었다. 인터넷 토론 공간이 담론의 발원지로 기능하며 다중지성이라는 개념이 뿌리를 내렸다.
비판적 시각도 있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 자체에 대해서는 사실이 왜곡된 측면이 있다"며 "(해방과 계몽의 방향으로) 파급력이 크다 하더라도,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며 장기적 관점에서 효과적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비평' 가을호)
윤 교수는 '철학과 현실' 겨울호에서는 "사실과 합리성에 기반하지 않은 진보운동도 비판받아야 한다"며 거듭 진보 진영의 반성적 자세를 주문했다.
■ 내부에서 불붙은 근현대사 논쟁 : '교과서' 보혁 대립 전선으로
정권의 의지가 실린 '좌편향 교과서 바로잡기' 작업은 주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이뤄지던 근대사 분쟁을 내부전 양상으로 변환시켰다. 보수 진영의 행동은 전격적이었고 뒤이은 건국절 논란에서도 주도권을 뺏기지 않았다.
안병직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은 '시대정신' 가을호에서 "몇몇 고교 교재들은 한결같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민중운동사적 역사관에 입각해 있다"고 주장했다.
이영훈 서울대 교수도 "현행 교과서가 한국이 어떻게 근대로 이행했는지에 대한 논의 없이, 종속주의ㆍ반제국주의의 역사만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보 진영의 반발도 가팔랐다. 김기협 전 계명대 교수는 최근 발간한 책 <뉴라이트 비판> 에서 "절차도 원칙도 무시하고 정권 입맛대로 교과서를 바꾸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식민지배와 독재를 정당화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며 "이런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개항기 일제에 협력한 실력자 집단에서 '고소영' '강부자'로 이어지는 기득권 세력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라이트>
■ 글로벌 경제위기의 충격 : 막시즘·케인스주의 등 재조명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공황 상태로 몰아가는 현실은 신자유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회의하게 만들었다. 최영종 가톨릭대 교수는 '비평' 겨울호에서 "세계화는 자유화와 경쟁의 강화를 통해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줬지만, 시장 실패의 가능성을 항상 갖고 있다"며 정치에 의한 세계화의 적절한 관리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개발독재, 시장만능주의에 일방적으로 경도된 정책으로는 위기 극복이라는 당면의 과제도, 선진화라는 구조적 과제도 처리하지 못할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다.('창작과 비평' 겨울호)
극단적인 영리 추구, 노동의 소외 등을 특징으로 하는 현 경제위기는 케인즈주의와 마르크스주의 등 '역사적 종말'을 맞은 것으로 인식됐던 이론들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
금융위기를 맞아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마르크스 <자본론> 의 판매가 급증하는 등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를 되돌아보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소장 학자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대안적 경제담론이 시도되고 있다. 자본론>
유상호 기자 shy@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