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22일 세종증권 매각비리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 등의 정치권 로비 의혹 수사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적극적인 수사 의지의 표명이라기 보다는, 미흡한 부분의 계좌추적을 계속해 나가다가 단서가 걸리면 하겠다는 소극적인 의미의 입장표명이라고 보는 쪽이 옳을 것 같다. 최근 임채진 검찰 총장 등 검찰 수뇌부는 세종증권 수사를 확대하지 않고, 경제위기가 고비를 넘을 때까지 검찰권 사용을 신중히 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치권 로비의혹의 시한폭탄은 아직 터지거나 제거되지 않은 상태다. 중간 수사결과 발표 때까지 검찰이 밝히지 못하고 계속 추적 중인 자금만 500억원 가량에 이른다.
박 회장이 세종증권 주식투자로 얻은 시세차익은 259억원인데, 검찰은 이중 절반도 안된 121억원 정도의 사용처만 밝혔다. 나머지 자금에 대한 계좌추적을 계속해 이 돈이 누구에게 흘러 들어갔는지 파악할 예정이다.
박 회장이 운영하는 정산개발은 김해와 진해 지역 부지를 시행사 K,D사에 매각해 총 330억원의 차익을 남겼는데, 이 돈을 박 회장이 유용해 정치권 로비에 썼는지에 대해서도 규명작업이 끝나지 않았다. 검찰은 두 회사의 수익금 수백억원이 대표이사에게 지급된 가지급금 형식으로 빠져나간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대표이사로 등재된 박 회장의 비서실장 정승영씨가 “토지 매각 대금 회수를 위해 일시적으로 대표이사로 등재된 것 뿐이고, 돈을 빼낸 실 운영자는 강모씨”라고 주장함에 따라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씨는 해외로 도피했다.
검찰은 당분간 숨 고르기를 하면서 단서를 축적해 가다가 새로운 사정작업에 본격 착수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수감된 박 회장과 정 전 회장의 입을 열기 위한 작업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입을 열기 시작할 경우 정치권이 태풍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정 전 회장이 현대차 사건으로 수감되자 여야 정치인 30여명이 구치소로 접견을 온 사실이 확인됐다.
박 회장은 2006년 부인과 회사 임직원 등 5명의 이름으로 열린우리당 의원 20여명에게 후원금을 냈다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기소된 바 있다. 특히 박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도 막역하게 지내는 등 여권 인사들과도 두터운 친분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나 검찰 수사 향방이 주목된다.
지난해 초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김형진 전 세종캐피탈 회장을 불러 세종증권 매각비리 의혹에 대해 조사하고도 혐의를 발견하지 못한 것도 밝혀야 할 의혹 중 하나다. 김씨는 검찰에서 노건평씨 의혹 등을 적극적으로 진술한 장본인인데, 김씨가 어떤 이유로 민정수석실에서는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는지가 의문이다. 김씨가 조사에 협조했는데도 청와대가 이를 덮었을 경우, 사건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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