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눈은 내리지 않았다
강가에는 또다시 죽은 아이가 버려졌다
차마 떨어지지 못하여 밤하늘에 별들은 떠 있었고
사람들은 아무도 서로의 발을 씻어주지 않았다
육교 위에는 아기에게 젖을 물린 여자가 앉아 있었고
두 손을 내민 소년이 지하도에 여전히 엎드려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소년원에 간 소년들은 돌아오지 않고
미혼모 보호소의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집 나온 처녀들은 골목마다 담배를 피우며
산부인과 김과장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돈을 헤아리며 구세군 한 사람이 호텔 앞을 지나가고
적십자사 헌혈차 속으로 한 청년이 끌려갔다
짜장면을 사 먹고 눈을 맞으며 걷고 싶어도
그때까지 눈은 내리지 않았다
전철을 탄 눈 먼 사내는 구로역을 지나며
아들의 손을 잡고 하모니카를 불었다
사랑에 굶주린 자들은 굶어 죽어갔으나
아무도 사랑의 나라를 그리워하지 않았다
기다림은 용기라고 말하지 않았다
죽어가는 아들을 등에 업은 한 사내가
열리지 않는 병원 문을 두드리며 울고 있었고
등불을 들고 새벽송을 돌던 교인들이
그 사내를 힐끔 쳐다보고 지나갔다
멀리 개 짖는 소리 들리고
해외입양 가는 아기들이 울면서 김포공항을 떠나갔다
고요하지도 않고 더 이상 거룩하지도 않다. 그래도 해마다 이맘때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캐럴송이 흘러나온다. 사랑에 굶주려 죽어가도 아무도 사랑의 나라를 그리워하지 않는 땅을 아기예수는 얼마나 고통스러워할까. 삼십년 전의 시를 읽고 있는데도 조금도 변한 것이 없는 현실 앞에서 침묵하게 된다. ‘거룩한 밤’은 못 될 망정 열리지 않는 병원 문을 두드리며 울고 있는 사내의 절박한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고요한 밤’만이라도 부디 내것이 되길 기도한다. 그리하여 기다림은 다시 용기라고, 악몽 같은 삶 속에서도 끝끝내 놓칠 수 없는 사랑이 바로 성탄절이라고 간신히 말하고 싶다.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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