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파행이 계속되는 가운데 23일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안 중 처리된 것은 불과 12.9%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4대 개혁입법을 두고 여야가 치열하게 대결했던 17대 국회 첫해인 2004년 말 법안 처리율 27.5%(1,058건 접수 중 291건 처리)보다도 월등히 낮다. 여야가 정쟁에만 몰두하면서 국회 본연의 업무는 내팽개치고 있는 셈이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18대 국회 개원 이후 이날까지 16개 상임위에 제출된 법률안(동의안 결의안 등은 제외)은 모두 2,263건인데 그 중 293건만 처리(가결ㆍ부결ㆍ폐기ㆍ철회)됐다. 무려 1,970개 법률안은 계류 중이다. 국회가 파업 수준의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올 수밖에 없다.
상임위별로 보면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는 제출된 131개 법률안 중 단 1건도 처리하지 못했으며 정보위 역시 7건 모두 처리하지 못했다. 운영위는 46개 접수 법안 중 1개의 법안을 철회한 것을 빼고는 1건도 심의하지 않았다.
그밖에 상임위도 교육과학기술위 136건 중 2건, 외교통상통일위 40건 중 2건, 농림수산식품위 81건 중 7건, 보건복지가족위 280건 중 13건, 정무위 160건 중 16건 등으로 실적이 저조했다. 18대 국회가 표방한 '일하는 국회'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그나마 기획재정위가 여야 합의로 각종 감세안과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 등 관련 법안 115건을 처리해 전체 279건 중 41.2%의 처리율을 보여 비교적 높았다. 국방위도 49건 중 20%인 14건을 처리했다.
헌법재판소가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연말까지 법 개정을 해야 하지만 국회의 직무태만으로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입법미비는 법적 안정성을 해칠 뿐 아니라 관련 당사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헌재가 지난해 3월 국내에 주소가 없는 재외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은 공직선거법과 주민투표법 관련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올해 말까지 개정토록 했으나 국회의 심의 지연으로 개정되지 않았다. 또 낙태가 불가능한 임신 후반기까지도 태아 성 감별 고지를 원천 금지한 의료법 조항도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관련 법이 고쳐지지 않았다.
물론 국회의 성적을 법안 처리 건수로만 재단할 수 없다. 발의된 법안 중에는 의원들이 '생색내기' '실적 올리기' 용으로 졸속 발의한 것도 적지 않아 질적 평가가 동시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저조한 법안 처리 실적은 국회가 최소한의 임무도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긴 어렵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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