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구조조정 방향이 '조기 퇴출'로 가닥을 잡으면서, 첫번째 구조조정 대상인 건설사들과 중소 조선사들이 다시 생사의 기로에 섰다. 자체 구조조정이 경기악화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마지막 희망으로 믿었던 대주단이나 신속지원프로그램(패스트트랙) 역시 더 이상 방패막이 되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23일 "주채권은행이 이미 대주단협약 적용을 승인한 건설업체도 신용평가 결과 D등급을 받으면 유동성 지원이 중단되며 패스트트랙 적용 중소 조선사들도 평가결과에 따라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못박았다.
당혹스러운 업계
이 같은 정부방침이 발표되면서 특히 대주단 가입 건설사들은 패닉(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건설사들의 자체 구조조정 작업이 경기침체 심화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이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카드가 대주단 협약 가입이었다. 금융위는 당시 "대주단에 가입해야 회생이 가능하다"며 건설사를 압박했고, 그 결과 이 달 17일 현재 상위 100대 건설사 중 34개 건설사가 대주단 협약에 가입해 1년간 채무유예를 받았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이날 대주단 가입 건설사라도 유동성 부족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을 경우 자금지원을 중단하고 구조조정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대주단 가입= 회생'이라는 기대감마저 무너진 것이다.
은행의 패스트트랙만 믿었던 조선업계도 당황하긴 마찬가지다. 일부 조선사는 주채권은행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C&중공업은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C&중공업에 대한 긴급자금지원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개시 결정 이후 3주가 지나도록 계속 지연되면서 회사가 존폐 기로에 서게 됐다"고 밝혔다. C&중공업 관계자는 "금융권이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시간을 끌고 있는 사이 개별 기업들은 마지막 숨마저 쉴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고 호소했다.
정부 강경기조 돌변 배경은
김 금감원장은 이날 '살리기'에서 '퇴출'로 입장선회를 밝히면서, 그 첫 대상으로 건설사와 중소 조선사를 지목했다. 이는 대주단 협약과 은행권의 중소기업 패스트트랙 등 기존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자금지원에 치중돼 있어 부실기업을 솎아내는 데 한계가 분명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건설사와 중소 조선사를 첫 구조조정 대상으로 지목한 것은 이들 업체가 부동산 경기악화와 선박수주 급감으로 '일시적'이 아닌 '구조적' 자금난에 빠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건설업체는 올해 6~9월까지 매달 30~40개씩 부도가 났으나 10월에는 65개로 크게 늘었다. 조윤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건설업체의 신규수주는 4~5개월째 크게 감소하고 있고, 미분양 아파트도 15만호에 달한다"며 "건설사의 자금난은 이미 구조화돼 당분간 개선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업종도 '일시적 자금난'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는 지적. 조선ㆍ해운 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전 세계 신규 상선발주실적은 월 평균 200~300대 수준이었으나 10월에는 46척, 11월에는 23척으로 급감했다. 대형 조선사들은 넉넉한 수주잔고를 쌓아둔 데다 호황 때 벌어둔 수조원대 현금성 자산이 있어 버틸 체력이 있지만, 중소형사들은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 금감원의 설명이다.
문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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