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지망생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신춘문예의 계절.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응모작 수 '4,563'은 물신주의가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아니 더욱 힘을 발휘하는 문학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게 하는 뜨거운 상징이었다.
지난해(3,868편)보다 양적으로 20% 가량 증가한 올해 응모작은 장르별로 시 2,981편, 소설 328편, 동시 945편, 동화 206편, 희곡 103편이 접수됐다. 문단의 동시 열풍을 반영하듯 지난해보다 250편 이상 늘어난 동시 분야가 특기할 만했다.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는 5일자 소인이 찍힌 응모작의 추가접수가 끝난 15일부터 부문별 심사에 들어갔다. 당선자는 2009년 1월1일자 한국일보에 발표된다.
시 부문 심사위원들은 "최근 문예지로 등단한 시인들에 비해 신춘문예 출신 시인들의 수준이 떨어졌다는 시단 일각의 비판을 잠재울 만큼 빼어난 시들이 많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신춘문예를 풍미하던 실험시들의 퇴조가 두드러진 것이 눈에 띄었다.
심사위원들은 "최근 몇년간 '우리는 이제 너무나 잘 산다'는 허위의식이 장난같은 실험시들을 양산했으나, 삶의 현실이 어려워지면서 현실에 대한 긴박감이 넘치는 응모작들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이주노동자와 직업인들의 애환 등 생활현실에 수렴된 작품들이 많았다. 촛불시위, 정치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다룬 응모작들도 어렵지않게 볼 수 있었다.
소설 부문에서는 가족 해체, 소통 부재 등의 소재가 빈번하게 등장했다. 예심 심사위원 우찬제(평론가ㆍ서강대 교수)씨는 "주인공이 열심히 살았지만 파산해 호주나 미국으로 이민 갔으나 그곳에서도 다시 파산하는 등 경제적 고난과 관련된 작품들이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시- 실험시들 퇴조속 생활현실 수렴·풍자한 수작들 봇물
소설- 가족해체·소통부재 등 빈번… 노동소설 '눈길'도
동화- 탈북·환경 등 소재 많아… 교과서적 접근은 아쉬워
동시- 지망생들 서울 중심서 지방으로 확산 추세 긍정적
희곡- 유희성 강조하는 풍조 맞물려 우리말 '맛' 잘살려
이기호(소설가ㆍ광주대 교수)씨는 "타인과 관계 맺지 못하는 젊은세대들의 양상을 보여주는, 고양이나 리얼돌(real doll)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 주인공을 아예 '토마스'로 설정하는 등 외국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며 "1980년대 리얼리즘의 전통을 잇는 뛰어난 노동소설들을 볼 수 있었던 점도 반가웠다"고 말했다.
하성란(소설가)씨는 "일본소설, 잇단 연예인들의 자살현상의 영향 때문인지 친구 혹은 남편의 급작스러운 자살, 추락사 등을 다룬 작품이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동화에서는 탈북, 다문화가정, 환경문제, 경제위기로 인한 가정 붕괴 등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소재적으로는 다양해졌으나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고 일방적인 효 혹은 인간성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도덕교과서 같은 작품, 곧 어른들의 입맛에 맞춘 동화가 많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심사위원들은 "글쓰기의 기초가 갖춰진 응모자들의 작품이 수준도 높았다"면서도 "'우리 결혼했어요' '개그 콘서트' 같은 TV 프로그램을 차용한 작품들이 늘어난 현상은 다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동시 심사위원들도 응모작의 수적 증가가 작품 수준의 향상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다.
심사위원들은 "천사, 달님, 별님, 요술쟁이 등을 소재로 억지로 어린이스러워 보이려는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시들, 상투적으로 자연에 기대려는 작품들이 많았다"며 "하지만 지금까지 동시 지망생들이 서울 중심이었는데 지역으로 많이 확산된 점은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희곡 부문에서는 입말의 묘미를 살린 작품들이 많았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중평. 심사위원들은 계몽성, 문학성을 중시했던 우리 연극이 점차 유희성을 강조하게 되면서 '우리말'의 맛을 살려 '우리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고무적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또 "세상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반영하듯 노숙자, 노인을 다룬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며 "해피엔딩식 결말이 늘어난 점도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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