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서울을 지켜온 '국보 1호' 숭례문이 자신의 몸을 불살라 국민을 각성시킨 겁니다."
20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의 숭례문 복구 현장. 아픔이 많았던 무자년을 보내며 역사의 현장을 다시 찾은 시민단체 '한국의 재발견' 회원들은 "아직도 숭례문 화재 당시를 떠올리면 내가 타 들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궁궐 지킴이'로 불리며 경복궁 창덕궁 등지에서 문화재 해설을 하는 이들은 숭례문 복구 현장 내부를 일반에 공개한 8월15일부터 주말마다 이 곳을 찾아 숭례문의 역사를 관람객들에게 일러주는 자원봉사를 했다.
불 타 버린 국보 1호에 대한 애틋함이 누군들 덜할까마는, 이옥화(55ㆍ여)씨 마음은 한층 각별하다. 그는 숭례문이 불에 타 쓰러지기 전날인 2월 9일, 전소 직전 숭례문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18.2㎞에 이르는 서울의 성곽과 그 흔적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프로젝트의 첫 컷으로 숭례문을 찍었어요. 그 날 몹시 피곤했는데 이상하게도 숭례문 사진을 꼭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씨가 찍은 사진은 숭례문 전소 현장에 전시됐고, 언론 보도에도 인용됐다. 이씨는 "문화재 복구 과정을 그대로 노출시킨 것은 세계에서 처음"이라며 "완공 때까지 전 국민이 지켜보며 아픔을 함께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숭례문 복구 현장 내부는 8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주말마다 총 6회, 회당 30명씩 예약을 받아 공개했는데, 전국 각지에서 모두 3,462명이 다녀갔다.
"아이들을 데려 온 부모, 노부부 등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주로 와요.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겠다며 지방에서 비행기 타고 오신 분들도 많죠. 일본인 관광객들도 꽤 됩니다." 숭례문 복구 현장에서 그 동안 만났던 가슴 뜨거운 관람객들의 면면을 전하던 김숙향(54ㆍ여)씨는 "그런데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등 '높으신 분'들은 첫 날 빼곤 본 적 없다"고 말했다.
궁궐 지킴이들이 현장을 찾은 이 날도, 초등학생 손을 잡고 나온 주부들과 교복 차림의 여고생 등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12월부터는 내부 공개를 하지 않아 밖에서 투명 가림막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을 뿐이지만, 이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한 켠에서는 중년 남성이 흰 도포를 입은 채 숭례문의 한을 달래고 복을 비는 무속의식을 하기도 했다.
홍정희(53ㆍ여)씨는 "불탄 현장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관을 짜려던 소나무를 숭례문 복원에 써달라며 내놓는 '민초'들이야 말로 진짜 애국자"라고 말했다. 홍씨는 복원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열정도 전했다.
하루는 단청 복구를 맡았다는 중년 남성이 오셨는데 1980년대에 한 단청 보수의 잘못된 점을 꼼꼼히 지적하며 "이번에는 그럴 일 없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고 한다. 홍씨는 "숭례문을 복구하는 기술자나 지켜보는 국민들, 그걸 해설하는 우리 모두가 역사의 현장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설하는 지킴이들을 보고 더러는 "얼마나 받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단다. 이들이 순수한 자원봉사자임을 모르는 것이다.
고등학교 교장을 지내고 은퇴한 뒤 문화재 해설 자원봉사에 나선 김기억(76)씨는 "대가 없이 하기 때문에 문화재청 등 국가기관에도 직언을 할 수 있고, 금지구역까지 들어가거나 하는 관람객들에게 관람 질서를 지켜달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면서 "내 힘으로 서 있을 수 있는 날까지 이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숭례문은 불탔지만 복원 과정에서 땅속에 있던 조선시대 유적과 유물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숭례문 복원을 위한 발굴 조사에서 조선 후기 사람들이 숭례문을 통과할 때 밟았던 도로면과 민가 터 등이 확인돼 19세기 후반부터 일제 시대에 걸쳐 이뤄진 각종 숭례문 공사로 묻혀버렸던 조선 후기 숭례문 주변의 모습이 드러났다.
숭례문은 현재 1차 발굴을 마치고, 설계작업 중이며 2010년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간다. 복구 현장 내부는 내년 3월 지붕이 얹혀진 가설 덧집이 완성되면 다시 관람객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숭례문 복원 사업은 2012년쯤 완료된다. 이씨를 비롯한 지킴이들은 복원이 끝나면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숭례문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일본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이씨는 "더 많은 분들이 역사의 현장에 관심을 가져서 언젠가 서울이 체코 프라하처럼 '세계문화유산'이 되는 날을 꿈꾼다"고 말했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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