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사슴의 선물 택배 부담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한다. 유난한 경기 침체 탓에 어쩔 수 없이 선물 목록을 줄인 때문이다. 이제 연로한 산타와 사슴들에게는 다행일 수도 있지만, 늘 어린이들을 생각하는 산타가 마냥 기꺼워할 리 없다.
그런데, 몇 백년 계속한 크리스마스의 축복에 가장 큰 장애는 경기 침체가 아니라 지구온난화라는 소식이다. 예전에는 겨울이면 산타가 사는 곳(북극?)은 온통 얼음과 눈에 덮였다. 이게 올 여름 아주 녹아 내려 집 주변까지 맨 땅이 드러났다. 오래 전 눈 속에 파묻혀 잃어버린 자전거를 되찾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사슴 썰매를 타고 선물 배달을 떠나려면 눈 만드는 기계를 빌려와야 할 형편이다.
진실된 안목으로 세상 봐야
어제 아침 우연히 읽은 영국 신문의 <산타클로스 편지> 는 익살스러우면서도 우울하다. 어린이들에게 쓰는 형식이라 세상의 불행을 에둘러 가볍게 전하고 있지만, 실제로 글을 읽는 어른들은 새삼 마음이 무거울 것이다. 그래도 경기 침체보다 지구온난화를 더 큰 재앙으로 든 것에서 너른 안목이 엿보인다. 경쾌하고 교묘한 글이 천박하지 않은 이유다. 진부할지 모르나, 세상 만사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교훈을 담은 듯도 하다. 산타클로스>
7년 전, 2001년 이맘때도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글 제목은 <전쟁과 크리스마스> 였다. 미국과 서구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아프간 민중에게 자유와 평화의 축복을 주었다고 선전하지만, 역사상 인류에 축복을 안긴 전쟁은 없다는 내용이다. 전쟁과>
이런 진리를 잊은 채 전쟁 논리에 귀 기울인다면, 테러와의 전쟁도 크리스마스를 수십 번 지나도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캐럴 송에 들뜨기에 앞서 축복에서 소외된 아프간과 이라크와 북한 민중을 위한 진정한 사랑과 평화의 선택을 고민하는 마음이 아쉽다고 썼다.
파란과 격동의 세월이 흘렀다. 세상에서 악을 몰아내는 ‘정의를 위한 전쟁’을 지휘한 조시 부시 미 대통령은 호기롭던 기세와 달리 이라크의 수렁에서 허우적대다 ‘사상 최악 대통령’이란 치욕을 안은 채 곧 퇴장한다. 세계 금융중심을 자부하던 월 스트리트에서 출발한 미증유의 금융위기가 부시의 추락을 재촉했지만, 미국의 민심 이반은 전쟁의 실패와 국론 분열에 대한 염증이 주된 원인이다.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와 맞닥뜨린 미국은 ‘변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앞세운 버락 오바마를 새 지도자로 선택했다. 오바마는 미국민의 ‘위대한 선택’이 헛되지 않게 국정을 이끌 만한 자질을 과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링컨의 화합 인사를 본받아 이른바 ‘라이벌 내각’을 구성한 것이 높이 평가된다. 특히 우리 사회가 오바마의 행보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이명박 대통령도 유심히 보고 배우라는 충고가 쏟아진다. 비단 이 대통령뿐 아니라 모든 지도자가 새겨들을만하다.
그러나 7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는 세상의 격동과 변화를 냉철하게 관조(觀照)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사물의 참모습, 진실을 비추어 보는 지혜로운 이가 드물다. 이를테면 위선적 전쟁 명분을 덩달아 떠들다가 참담한 결과가 드러나면, 애초 무관한 듯 모른 체 할 뿐이다. 건강한 자본주의를 병들게 한 금융경제 논리를 열심히 전파하다가, 그 참혹한 붕괴 현장에서 구경꾼인양 뒷짐지는 이도 숱하다.
스스로 평화와 축복 얻는 지혜
그렇다고 요란하게 목청 높이는 이들이 세상을 올바로 보고 진실된 마음으로 사회를 일깨우는 데 힘쓰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내가 받드는 이념과 논리, 자신이 지지한 정권과 대통령이 옳다고 강변하기 위해 오바마의 정책 방향까지 편한 대로 규정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런 왜곡된 행태는 대개 이기적 이익을 다투는 의도와 심리가 바탕이다. 나라가 온통 싸움판이 된 근본이다. 유난히 우울한 크리스마스를 맞지만, 진정으로 사랑과 평화의 선택을 고민했으면 한다. 그게 스스로 축복을 얻는 지혜이다.
강병태 수석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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