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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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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거미

입력
2008.12.2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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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우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 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 오다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 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 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 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를 동정하는 일도, 밤을 지새운 거미의 필사적인 그물짜기에 공감하는 일도 고통스럽기만 하다. 잠자리를 구출한다면 거미에게 죄를 짓게 될 것이고, 그대로 두면 잠자리가 죽어가는 걸 지켜보아야 하니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을 것이다. 어떤 결정도 할 수 없는 판단 정지의 상태. 흔들리는 건 숲 전체만이 아니라 시인을 포함한 우주 전체다.

허리를 굽혀 거미줄이 다치지 않도록 지나가는 건 ‘채 해결 안 된’ 생명의 질서를 그 자체로 존중한다는 뜻일 게다. 잠자리나 거미처럼 살펴야 할 식솔들을 거느린 마흔아홉 사내의 외로움이 문득 눈부시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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