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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月色이 교교한 함월산 기림사서 신라의 달밤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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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月色이 교교한 함월산 기림사서 신라의 달밤을 거닐다

입력
2008.12.2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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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이름으로 한 산들이 있다. 영암 강진의 월출산, 충주의 월악산들이 그렇다. 경주에도 달과 깊이 관련된 산이 둘 있다.

석굴암을 이고 있는 토함산은 달을 토해내는 산이고, 그 오른쪽의 함월산은 달을 머금는다는 봉우리다. 함월산은 달을 잘 담을 수 있게 둥글고 넓은 분지 모양인데, 그 한복판에 기림사라는 고즈넉한 사찰이 들어 앉아 있다.

불국사보다 앞서 지어졌고 한때는 불국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고찰이다. 달빛만큼이나 단아하고 정갈한 기림사는 김동리 소설 '무녀도'에서 을화가 아들을 불제자로 만들기 위해 맡긴 곳이기도 하다.

천 개의 강에 천 개의 달빛이 가득 비추는 보름에 맞춰 1,400년 고찰 기림사를 찾았다. 단청이 벗겨진 대적광전의 말간 처마 위로 달이 뜨길 기다렸다. 해가 저물고 어둠이 벨벳 카펫을 깔자 드디어 은빛 달이 나타났다. 달은 해처럼 요란스럽게 뜨질 않았다. 수줍은 색시처럼 슬며시 산 능선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만월이다. 휘영청 밝은 달빛에 절 마당이 훤했다. 여드름이 채 가시지 않은 앳된 혜준 스님과 사찰의 살림을 맡고 있는 보살 두 분이랑 달빛 산책을 나섰다. 달빛은 스님의 장삼 자락의 주름이 보일 만큼 밝았다.

절 옆으로 길게 휘어진 길을 따라 달님도 함께 걸었다. 마치 흑백영화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낙엽을 밟는 소리와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교교한 달빛 스크린의 배경 음악이다. 감로암을 지날 땐 먼 발치에서 개 짖는 소리가 달빛에 메아리쳤다.

길을 허옇게 드러내는 달빛의 부드러움은 감로암에서 나오는 감로수마냥 감미롭다. 한 굽이를 접어들며 산자락이 달을 가리자 별들이 여기저기서 총총 제 빛을 토해낸다. 밤은 어둠이 아니었다. 인공의 빛이 없는 자연의 밤이 이토록 훤할 줄이야.

기림사의 차밭과 연밭을 돌아 다시 절마당으로 들어섰다. 보살님이 내어 준 온돌방의 뜨끈한 구들에 몸을 뉘며 불을 껐다. 창호지를 투과해 들어오는 달빛. 쉬 눈이 감기질 않았다.

기림사 바로 옆 산길은 신라 때 서라벌과 바다(감포)를 잇는 주요 교통축이었다. <삼국유사> 는 '신라 31대 신문왕이 동해에 용으로 화한 선왕(문무왕)으로부터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얻어 가지고 왕궁으로 돌아가는 길, 기림사 서편 시냇가에서 잠시 쉬어갔다'고 적고 있다.

지금은 보문에서 추령터널을 지나 양북, 감은사로 길이 열렸지만, 당시엔 서라벌-보문호-덕동댐-추령계곡-추원마을-수렛재-용연폭포-기림사-대종천-감은사로 이어졌다고 한다. 신문왕이 지났던 감포 가는 신라 옛길이 기림사 옆에 짧게나마 남아 있는 것이다.

문살에 달빛 부딪는 소리를 들으며 스르르 잠이 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 목탁 소리가 잠을 깨웠다. 시계를 보니 바늘은 새벽 3시 반을 가리켰다. 새벽 예불 30분 전 요사채와 법당을 돌아서 목탁을 두드리며 독송하는 도량석이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둥둥둥~' 이번엔 북소리다. 종루의 북과 범종, 목어, 운판이 차례로 운다. 가죽 있는 축생에게 진리를 전한다는 법고, 물 속의 중생을 제도한다는 목어, 하늘을 나는 새와 허공을 헤매는 영혼을 천도하는 쇠로 된 운판, 지옥의 중생까지 제도한다는 범종을 함께 일컬어 사물이라 한다. 새벽 예불이 있기 전 잠자는 영혼을 일깨우는 각성의 소리다.

스님과 절에서 밤을 보낸 보살님들이 하나 둘 대적광전으로 모였다. 저음의 합창으로 예불이 시작됐다. 들숨과 날숨이 반복되는 일정한 리듬의 예불 소리가 대적광전 마당에 낮게 깔리더니 처마 위에서 비추는 달빛을 타고 하늘로 퍼져 올랐다.

경주=글·사진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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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갈한 천년고찰 기림사 마음까지 정갈하게

기림사는 불국사보다 먼저 신라 선덕여왕 때 세워졌다. 천년 고찰인 기림사는 구불구불 오르는 숲속의 진입로부터 마음을 정갈하게 한다.

천왕문을 지나 반기는 것은 일자형으로 길게 좌우를 편 진남루다. 임진왜란 때 승병 지휘소로 사용되었던 진남루는 다른 절집의 강당처럼 거대하거나 높지 않다. 진남루 벽면은 외창 역할을 하는 나무문이 정갈한 모습으로 야무지게 닫혀 있다. 장방형 문짝이 빚는 절묘한 조화가 조각보를 보는 듯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벽면이다.

맞배지붕을 한 대적광전은 기림사의 본전이다. 대적광전의 삼존불은 조선 초기 불상의 전형을 갖추고 있다. 대적광전의 가장 큰 미학은 소담한 꽃살문에 있다. 원형으로 테를 두르거나 테두리 없이 격자로 정교하게 짠 꽃살문은 단청은 다 바랬지만 나무 속살의 색만으로도 풍성한 느낌을 전해준다.

진남루와 대적광전 등 무채색의 건물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다양한 모양의 담벼락이다. 차곡차곡 머리통 만한 돌로 쌓은 돌담과, 기왓장을 포개 무늬를 넣은 흙담 등이 사찰의 고즈넉한 풍경을 변주한다.

기림사도 최근 불사를 크게 일으켰다. 응진전 뒤의 너른 마당은 새로 지은 건물들로 화려하다. 거대한 삼천불전과 템플스테이용 건물들이다. 절 사람들은 단청이 없는 아래쪽을 '올드 기림사', 이 위를 '뉴 기림사'라 부른다.

기림사는 보물 사찰이다. 사찰 입구의 성보박물관에서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기림사 보물의 중심은 박물관 한가운데 모셔져 있는 건칠보살좌상이다. 1501년(연산 7년)에 만들어진, 진흙으로 만든 속에 삼베를 감고 종이를 발라 그 위에 옻칠을 하고 다시 금을 입힌 불상이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얼굴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몸은 늘씬하게 잘 빠졌다. 옷 주름도 여성의 숄이 흘러 내리듯 뇌쇄적으로 몸을 감싼 파격적인 디자인이다. 남자가 봐도 매력적인 꽃미남 같은 불상이다.

박물관에는 삼존불에서 나온 복장유물과 지옥, 염라대왕을 묘사한 탱화 등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옆 산자락에는 김시습의 영정을 모신 사당도 있다.

기림사는 체험ㆍ휴양형 템플스테이의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는 사찰이다. 연 1,000여명이 산사의 달빛 기운을 받기 위해 찾아온다. 한번에 머물 수 있는 최대 인원은 50명. 그리 북적거리지 않아 좋다.

예불과 발우공양만 시간에 맞춰 지키면 나머지 시간엔 절의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비데 등을 갖춘 쾌적한 화장실과 샤워 공간도 갖추고 있다. www.kirimsa.com (054)744-2292

경주=글·사진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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