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이 떨어진 만큼 이자를 드릴 테니 나가지 마세요."
서울 서초동에 109㎡(33평)형 아파트를 세 놓았던 김모(48)씨는 최근 세입자가 전세금 반환을 요구하자 "주변 전세 시세가 떨어진 만큼 매달 은행이자를 드릴 테니 있어만 달라"고 요구했다 거절 당했다.
당초 김씨는 전세금 시세가 5,000만원 정도 떨어진 것을 감안, 그에 해당하는 이자 30만원을 다달이 줄 생각이었다. 김씨의 사정상 전세금 3억5,000만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세입자도 은행이자만큼의 현금수입이 보장되므로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최근 상가 공인중개사로부터 "3억원으로 낮춰도 세입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말을 들은 터라 세입자에게 "입금 날짜를 꼬박꼬박 잘 지키겠다"고까지 강조했다. 하지만 세입자는 전세금에 5,000만원을 더 보태 넓은 평형대 전세로 가겠다면서 한 마디로 거절했다.
김씨는 할 수 없이 수천만원의 손실을 감수해 가며 펀드를 해지하고, 살고 있는 방배동 아파트를 은행에 담보로 제공해 간신히 3억5,000만원을 만들어줬다.
전월세가 폭락하면서 집주인과 세입자간의 위치가 뒤바뀌는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불과 6개월 사이 서울 전세가격이 20~30% 떨어지면서 생긴 풍속도이다. 더구나 경기침체로 투자한 돈을 회수하기가 어려워진 소유주들은 꼼짝 없이 세입자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이 이처럼 세입자에게 거꾸로 돈을 주는 '역월세'이다. 역월세는 외환위기 당시 처음 등장했다 경기침체가 가속화한 요즘 다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서울 돈암동의 85㎡(25.7평)형 아파트를 1억8,000만원에 전세를 놓고 있는 박모(56)씨도 최근 떨어진 전세금 3,000만원 정도에 대해서 세입자에게 다달이 20만원을 주기로 하고 간신히 재계약에 성공했다.
박씨는 "전세금을 돌려주기 위해서 대출을 받아봐야 어차피 은행 이자가 나가는데, 그 돈이 그 돈"이라며 "차라리 이자를 기존 세입자에게 주고 재계약을 하면 50만원 정도 하는 복비도 아끼고 세입자를 새로 구하는데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이렇게 했다"고 말했다.
월세입자도 예외는 아니다. "월세를 보증금에서 빼가라"고 통보하는 것은 양반이고 "월세를 깎자"고 나서는 이들도 있다.
경기 광명시의 한 다세대주택을 보증금 2,000만원, 월 30만원에 세 놓고 있는 장모(41)씨는 최근 임차인으로부터 "월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월세를 못 주겠으니 보증금에서 빼가라"라는 말을 들었다.
이자 비용을 생각하면 분명 손해지만 장씨는 임차인에게 "회사 사정이 빨리 좋아지기 바란다. 월세는 신경 쓰지 마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장씨는 "주변에 월세를 깎는 사례도 있는데 이 정도면 다행"이라면서 "세입자나 집주인에게 모두 고통스러운 경기침체가 해소되길 바랄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답답해 했다.
집주인이 임차인에게 집을 사달라고 하는 읍소하는 경우도 있다.
서초동의 82㎡(25평)형 아파트 주인 김모(71ㆍ여)씨는 최근 아들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전세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았다. 하지만 매수세가 뚝 끊겨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자 궁여지책으로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금 3억원에 3억5,000만원만 보태면 집을 팔겠다"고 제안했다.
시세(7억원)보다 조금 싸게 내놓았지만 임차인으로부터는 "계속 가격이 떨어질 텐데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는 답변만 들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역월세나 역전세난이 최소한 내년 봄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용진 부동산뱅크 본부장은 "지금 상황으로서는 언제 부동산 경기가 살아난다고 속단할 수 없다"면서 "학군이 좋은 곳이라면 신학기를 앞두고 전세나 이사 수요가 다소 살아나겠지만 다른 지역에는 상당 기간 임차인 우위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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