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은행에 돈을 쏟아 붓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은행 자본확충에 들어갈 펀드 20조원에, 주택금융공사가 유동화해 줄 은행 주택담보대출 채권 7조원,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은행에서 매입할 부실채권 3조원까지 합치면 정부가 내년 은행에 투입할 돈은 무려 30조원에 이른다. 임승태 금융위 사무처장은 "이제 국내 은행의 유동성에 대한 대내외 의구심은 이것으로 끝났다고 봐야 한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펀드규모는 충분한가
지금 현 시점의 은행 재무구조엔 별 문제가 없다. 문제는 앞으로다. 내년 이후 경기침체와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자연스레 부실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데, 이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 생각이다. 외환위기 때처럼 불이 붙은 뒤에 끄려면 천문학적 공적자금 투입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만큼 '자본확충펀드'를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시중은행들의 BIS 기본자기자본비율은 8.33%. 은행별로는 ▦국민 9.17%, ▦SC제일 9.06% ▦신한 8.50% ▦씨티 8.43% ▦외환 8.31% ▦우리 7.64% ▦하나 7.43% 등이다. 금융위는 9% 미달은행에 대해 자본확충펀드를 쓰도록 할 예정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영국에서도 기본자기자본비율 9% 미만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했으며 미국 은행의 6월말 기본자기자본비율도 8.76%에 이르는 점 등을 감안해 기준을 9%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시중은행들이 기본자기자본비율 권고치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총 금액은 약 11조원. 지금까지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금액은 3조원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업계에선 내년 경기가 악화하면 추가로 6조~7조원이 더 필요할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20조원이라는 자본확충펀드의 규모는 일단 충분해 보인다. 18개 시중은행장들도 이날 서울 전국은행연합회에서 간담회를 열고 "정부가 20조원의 은행권 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해 향후 경기침체로 부실여신이 증가하더라도 실물경제를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게 됐다"며 환영의사를 밝혔다.
금액보단 어떻게 쓰이냐가 문제
하지만 은행들의 속내는 불편해 보인다. 펀드 지원을 받았다가 경영권 간섭을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은행의 자율적 판단에 의해 펀드지원 여부를 신청하게 되며 지원 받는 은행에 대해서는 기존 주주의 경영권 침해를 최소화할 것"이라며 "자본확충펀드는 은행이 발행한 의결권 없는 증권들을 매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A은행 지주사 임원은 "10월 초 정부가 은행에 대해 외화차입 지급보증을 해주면서 정부간섭이 생각보다 심했다"며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단지 보증서주는 것도 이럴 진데 자금지원을 받으면 보다 심한 경영권 침해가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은행 자본확충의 궁극적 목적은 기업 구조조정과 실물경제 지원에서의 은행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것인데, BIS 비율만 너무 강조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B은행 재무담당 임원은 "일부 은행이 노력 끝에 BIS 비율을 맞춘다손 치더라도 내년 정부와 함께 기업 구조조정 등에 나서면 어차피 BIS 비율은 또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그런데 정부가 기본자본비율 9% 미만인 은행들은 부실은행이라고 온 국민에게 학습시켜 놨으니 은행이 앞으로 기업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또다른 은행 임원은 "1월말까지 BIS비율 권고치를 맞추지 못하더라도 상황만 허락한다면 내년 상반기까지는 최대한 버티면서 자구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대문에 판(자본확충펀드)은 벌려 놓았지만, 과연 손님(요청은행)이 있을지는 현재로선 불투명해 보인다.
▦금융위기 대책 분야별 내용
▲ 기업자금 지원
ㆍ국책은행 증자로 기업여신 14조원 확대
ㆍ신ㆍ기보 신규 보증공급 11조7,000억원 확대
ㆍ주택금융公 은행 7조원 주택담보대출 유동화(은행역할 강화)
ㆍ자산관리公 은행 부실채권 3조원 매입(은행역할 강화)
ㆍ중소기업 50조원 신규자금 공급 유도
ㆍ10조원 규모 채권안정펀드로 유동성 공급
ㆍ3월 말까지 증시안정펀드 자금 5,150억원 투입
ㆍ기업어음(CP) 대체할 단기사채 제도 도입
ㆍ자산재평가, 달러기준 회계허용 등 회계제도 개선
▲ 기업ㆍ금융 구조조정
ㆍ채권금융기관조정위원회 강화
ㆍ기업재무개선지원단 활성화
ㆍ부실 PF대출 자산관리公 통해 매입
ㆍ퇴출, 인수합병 등 구조조정 추진
ㆍ저축은행 인수합병 통한 자율 구조조정 추진
▲ 금융기관 자본확충
ㆍ20조원 자본확충펀드로 은행 BIS 비율 개선
ㆍ지급여력비율 150% 미만 보험사 예방적 자본확충 추진
ㆍ한은 통한 증권사 유동성 지원
ㆍ저축은행 대주주 증자 추진
ㆍ채안펀드 통해 여전채 매입
▲ 서민ㆍ금융소외계층 지원
ㆍ담보주택가격 하락한 서민 대상 주택금융公 대출보증
ㆍ주택담보대출 만기 및 거치기간 연장
ㆍ소액서민금융재단 지원규모 400억원으로 확대
ㆍ신용회복기금 72만명 채무재조정
ㆍ신보 창업기금 7조5,000억원 보증지원
ㆍ기보 기술창업기업 4조8,000억원 보증지원
ㆍ기업은행 300억원 일자리 창출 지원펀드 조성
ㆍ2,500명 금융기관 인턴제도 추진
ㆍ대부업체, 일정금액 이상 대부시 상환능력파악 의무화 규제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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