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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하이자오(海角) 7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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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하이자오(海角) 7번지

입력
2008.12.2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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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개봉한 대만 영화 <하이자오(海角ㆍ곶) 7번지> 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대만 영화사를 새로 쓰고 있다. 유머, 잔잔한 인간미, 촘촘한 구성 등 흥행 요소를 잘 버무려 올해 중화권 영화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중국 정부가 최근 이 영화의 중국 상영을 허용했다. 하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영화 스토리가 중국 정서에 맞지 않는데도 상영을 허용해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중국 상영

영화는 타이페이에서 록밴드 가수로 일하다 고향인 남부 해안 도시 헝춘(恒春)으로 돌아간 남자 주인공이 임시 우편배달부로 일하면서 사랑을 이루는 과정을 그린다. 주인공은 일본 가수의 헝춘 공연을 위해 급조된 아마추어 밴드에 참가했다가 공연을 준비하는 일본 여성과 티격태격하면서 사랑을 키운다.

영화의 모티브는 60년 전의 또 다른 사랑이다. 1945년 패전으로 대만을 떠나야 했던 일본 청년과 그를 잊지 못하는 대만 여성의 사랑이 세월을 훌쩍 건너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잇는 아교가 된다.

귀국선 안의 일본 청년은 배에 타고 있던 7일 동안 7통의 편지를 대만의 애인에게 쓴다. 사랑하면서도 헤어져야 하는 기구한 운명에 대한 원망이 절절하게 담겨 있다. 그러나 편지는 청년이 늙어 죽은 뒤에야 우여곡절 끝에 옛 애인이 살던 헝춘시 하이자오 7번지로 배달되며 대만의 여인은 60년 전 남자의 편지를 뒤늦게 받아본다. 그리고 우편 배달부인 남자 주인공은 우연히 그 편지를 뜯어 보면서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일본인 여성과 사랑을 이뤄 나간다.

영화가 감동적이기는 하나, 순수한 사랑 이야기에 식민지의 기억이 끼어들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줄거리가 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대만은 우리와 정서가 다르다. 이런 식으로 식민 지배국과 피지배국 남녀의 사랑 구도가 역사적 간섭을 받지 않는 자연스러운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대만인에게 식민지배자 일본을 향한 적대감의 농도는 상당히 옅은 편이다. 리덩후이(李登輝) 전 대만 총통이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할 정도였으니까. 반만년 역사 중 36년의 치욕기를 매우 강렬하게 기억하는 한국과, 근세 이후 네덜란드 일본 등 여러 국가의 지배를 받은 대만의 역사는 식민지배에 대한 다른 빛깔의 추억을 만들었다.

정서까지 포용하는 자신감

한국과 비슷한 기억 모드를 갖고 있는 중국 정부가 이 영화를 껄끄럽게 여긴 것은 당연하다. 지난달 중국 대표단을 이끌고 타이페이를 방문, 대만인에게 친근감을 표시하기 위해 일부러 이 영화를 관람한 천윈린(陳雲林)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 회장 조차 귀국 후 "식민지배 당시 일본에 세뇌된 의식에 오염된 듯한 영화"라고 밝혔다.

황국식민화 교육의 결과가 영화에 그대로 투영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중국 정부가 외설 논란에 휩싸였던 리안 감독의 <색 계> 를 반일 정서 영화라는 이유로 상영을 허용했던 전례를 떠올리면 중국의 대일 과거사에 대한 엄격한 잣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양안간 직항 통항 우편교류 등 3통(三通)이 실현되는 상황을 감안해 영화 상영을 결정했다. 대륙 중국인과는 판이한 대만인의 대일 정서마저 끌어안겠다는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진정한 포용은 상대방의 정서까지도 포용하고 배려하는 것 같다. <하이자오 7번지> 의 중국 상영 결정을 두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영섭 베이징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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