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우리가 만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서점에서 책을 구입함으로써 책을 소유하는 길이다. 선물을 받는 것도 책과 만나는 또 다른 경우일 것이다. 스스로 책을 구입할 때는 대부분의 경우 책의 내용이 우리와 책이 만나는 동기를 이룬다. 그러나 선물을 받음으로써 만나는 책의 경우는 이와는 아주 다르다.
선물로서 책을 전해 받았을 때는 반드시 선물을 한 사람의 뜻이 따라온다. 그것은 다른 종류의 선물이 아니라 책이라는, 책 자체의 의미로부터 내용에 관련된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할 것이다. 좋아하는 저자를 소개하는 빌미로 책을 전하기도 할 것이고, 책의 제목이나 기억하고 싶은 한 구절에 자신의 마음을 실어 전하기 위해서 책을 선물하기도 할 것이다.
내가 받은 책 선물 중에서도 잊지 못할 책이 한 권 있다. 나는 대학 시절 불문과를 다녔다. 언제고 입산수도하듯이 불문학 공부에 빠져보리란 결심만은 누구보다도 강했지만 결행은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면서 온갖 딴 짓만 골라 하고 있었다. 불문과 은사이신 K교수가 내게 선물하신 한 권의 책은 이후 두고두고 그 선물에 담긴 의미를 되뇌이게 하고 있다.
K교수가 내게 주신 책은 보들레르의 <산문시집> 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책의 모양은 흔한 그냥 한 권의 시집이 아니었다. 호화본이었다. 게다가 한정본이었다. 프랑스 국립 인쇄소는 프랑스의 고전만을 골라서 정성스럽게 한 권씩 한 권씩 고가의 호화 장정으로 출판하는 일을 해 오고 있다. 책이라는 보존 문화재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책이 받아야 할, 그 책의 내용이 받아야 할 최상의 대접을 하는 것으로 말이다. 산문시집>
내가 받은 <산문시집> 도 그런 시리즈 중의 한 권이었다. K교수가 주신 보들레르의 시집의 의미는 출판사 근무를 그만하고 내게 보들레르 공부를 제대로 해보라는 것임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책 만들기에 빠져 정신이 없는 제자에게 보낸 무언의 채찍이었다. K교수는 보들레르 연구에 평생을 바친 우리 불문학계의 큰 어른이셨다. K교수가 자신의 귀중한 소장본을 선물로 내어주신 의미를 나는 끝내 실천하지 못하였다. 나는 이후 디자이너가 되었고 그 책을 들고 다니면서 잘 만든 책의 견본으로 삼고 있다. 산문시집>
정병규 북디자이너ㆍ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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