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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헬리콥터 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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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헬리콥터 벤

입력
2008.12.2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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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경제참모인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재임 시절 의회 청문회에서 적대적인 질문이 이어지면 '신비스러운 존재'가 되고자 노력했다. 그는 청문회 내내 시거를 피워대며 부당한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 의원들을 애매모호한 통화정책의 세계로 이끌어 혼란에 빠뜨렸다. 1980년 상원청문회에서 볼커를 상대로 심문을 마친 한 의원은 "당신이 무슨 말을 하건 상대는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니, 당신은 정말 훌륭한 전쟁포로가 될 것 같소"라고 쏘아 붙였다.

▦볼커의 후임자인 앨런 그린스펀은 역대 의장 중 연막전술을 가장 잘 썼다. 경제를 예측하고 통화정책 목표를 설명할 때마다 의도적으로 모호한 자세를 취하는 '암호어법'을 구사했다. 의회 청문회에서 "여러분이 내 말을 똑똑히 알아들었다면 틀림없이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나는 중앙은행가가 된 이래 아주 조리 없게 중얼거리는 방법을 배웠습니다"라고 말해, 의원들이 머리를 긁적거리게 만들었다. FRB 의장들의 신비주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정치권의 압력을 이겨내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예측 실수에 대한 엄정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방법이기도 했다.

▦반면 벤 버냉키 현 의장은 신비주의와 암호어법을 걷어내고 투명한 FRB를 만들려고 힘썼다. 그린스펀이 신탁을 내리는 무녀(巫女)와 같은 어법을 구사했다면, 버냉키는 경제예측과 정책 목표 및 수단에 대해 분명한 메시지를 주는 것을 선호했다. 충분한 의사소통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건전한 통화정책을 수립하는데 필수적이라고 본 것이다. FRB 투명화를 위해 노력한 그는 금융위기를 맞아 미국경제의 구원자로 분투하고 있다. 기준금리를 제로수준까지 내리고 달러를 무제한 찍어 돈을 돌게 하는 양적 완화정책까지 내놓았다.

▦FRB 95년 역사상 처음으로 제로 금리라는 급진적 수단을 선택한 그는 '헬리콥터 벤'으로 불린다. 디플레이션으로 물가급락과 실업급증 등 경제가 붕괴위기에 처하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려서라도 불황을 막겠다는 소신을 피력한 때문이다. 그는 "디플레이션과의 전쟁은 길거리 싸움과 다를 바 없다. 적을 꺾기 위해 더 급진적 조치를 취하면 항상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적 전시상황에서 부여된 비상대권을 활용, 모든 화력을 주저 없이 퍼붓고 있는 헬리콥터 벤의 사투가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그가 패배하면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국민의 고통도 그만큼 연장될 수밖에 없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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