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자본확충펀드에 한국은행이 10조원을 대는 것은 올들어 한은이 해 온 유동성 공급과는 차원이 다르다. 발권력(돈을 찍어내는 힘)을 이용해 돈을 푸는 겉모양은 같지만 이번 지원은 특별한 위기시에만 가능하도록 규정된 법 조항을 근거로 시행되는 첫 '비상조치'이기 때문이다. 일단 벽을 허문 이상, 더욱 비상한 조치들이 나올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한은은 18일 "금융위원회로부터 자본확충펀드 지원 요청을 받고 현재 지원방법 및 조건 등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한은은 "지원 여부를 포함한 모든 결정은 금융통화위원회가 한다"고 선을 그었지만 정부가 확정 발표까지 한 마당에 금통위가 이를 거부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현재 유력한 지원 방식은 펀드를 운영할 자금중개기관(일종의 특수목적회사ㆍSPC)에 10조원을 대출해 주는 것. '은행들의 은행'인 한은은 평소 대부분 시중은행들과만 자금거래를 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번 대출대상은 은행이 아니어서 별도의 근거가 필요하다.
결국 한은은 '심각한 통화신용 수축기에는 은행이 아닌 영리기업에 여신할 수 있다'는 비상 규정(한은법 80조)을 발동해야 할 상황이다. 80조 적용은 외환위기 때인 1997년12월 증권사 등에 3조원을 지원한 이후 처음이다.
최근 이성태 한은 총재의 "비상 수단을 동원해야 할 지 고민되는 경계선에 와 있다"는 발언에 비추면 이번 조치는 그 경계선을 넘는 첫 걸음으로 볼 수 있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기준금리 대폭 인하 등으로 시중 신용경색 현상이 다소 완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추세적으로 완화될 지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능성 높은 추가적인 비상조치로는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의 직접적인 매입이다. 채권시장을 통한 자금조달 사정이 풀리지 않을 경우, 한은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처럼 이 같은 조치를 취할 것이란 예상이다.
이한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들의 실적 발표가 집중되는 내년 3~4월에는 자금사정이 더욱 나빠질 수 있는데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차원에서 이번 한은의 조치는 적절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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