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중인 '엄마열전'은 이방인의 눈에 우리 삶의 풍속과 일상사가 어떻게 비칠까 호기심을 끄는 작품이다. 미국인 작가가 한국사회를 취재하고 쓴 원작을 극단 차이무가 번역과 각색을 거쳐 무대 위에 올렸다(윌 컨 작, 이상우 역, 민복기 각색 연출).
원제는 한국 여인의 강인함을 강조한 'Mothers and Tigers'. 가부장제와 남존여비 전통이 만든 몸과 마음의 상처, 고부간의 갈등, 결혼제도에서 여성이 겪는 여러가지 불이익 등을 소소한 일상사로 녹여 다섯 여자들의 수다 형식으로 펼친다.
무대는 어느 집의 옥상, 김장 준비가 한창이다. 벽에 걸린 마늘 담긴 망, 찌그러진 그릇들, 최신형 채칼, 말라붙은 화분, 그리고 솟은 굴뚝까지 사실적인 소품과 세트가 실감난다.
극장에 들어서면 고추 마늘 등의 싸한 냄새가 코를 콕 찌르는데, 연극적 약속으로 '했다 치고' 가는 게 아니라 절인 배추속을 버무리는 장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기서 사실성은 '리얼리티' 자체에 대한 엄격함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무대라는 허구가 '사실 시늉'을 하는 데서 관객에게 즐거움을 유발시키기 위한 유희적 목적에 가깝다.
극에 등장하는 모든 남자 역을 소화해야 하는 멀티 맨 격 1인 배우의 양념 역할도 이 극의 유희성을 맛깔스레 돋운다(최덕문, 정석용, 오용이 날을 바꿔 출연한다).
극의 갈등 요소는 약한 편이다. 며느리를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은 맏동서의 시어머니 노릇에 대한 아랫동서들의 논평이 수시로 끼어들고, 어른들의 무차별 수다 속에 가족사 취재 과제를 하러 온 여고생 딸의 귀를 단속하는 둘째 동서의 안간힘 정도가 상황을 지탱한다.
극엔 동서 간 경제적 상황 차이에서 오는 갈등도, 아이들 진학 경쟁도, 집안 대소사의 책임 유기와 희생 정도에 따르는 갈등도, 애 딸린 이혼녀를 막내동서로 받아들이는 데 대한 갈등도 없다.
오직 '호랑이' 시어머니가 죽어 부재하는 자리, 한 배에서 내려진 새끼들처럼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며 다정하기만 하다. 어쩌면 이방인이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다소 미화된 방식의 삶의 풍경일지도 모르겠다.
궁극적으로 이 연극은 연말 시즌에 맞춘 듯 희극의 축제적 향연을 관객과 함께 나누려 한다. 비극이 희생양 주인공을 제물 삼아 공동체를 결속하는 상징 제의를 치른다면 희극은 실제 음식과 술을 나눠먹으며 풍요를 기원하는 축제 형식을 취하는데, '엄마열전'은 이런 점에서 희극의 공식에 충실하다.
관람 후 극중에서 배우들이 버무린 김치를 관객과 나누는 이벤트로 극 행위를 마감한다. 그러나 희극의 일반적 속성이 아닌 극단 차이무 특유의 희극정신, 한국사회 현실에 관한 톡 쏘는 풍자극을 이젠 맛보고 싶다. 31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극작ㆍ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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