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은 이명박 대통령이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된 지 1년 되는 날이고, 20일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꼭 300일이 된다.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일까,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큰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고 정권 지지도는 추락을 거듭했다. 이 대통령에게는 시련의 300일이었다.
이 대통령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는 자평 속에 첫 내각을 국민 앞에 선보였지만 장관 후보자 3명이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곧바로 옷을 벗었다. 삐걱댄 출발이었지만 이 대통령은 개의치 않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자세는 4ㆍ9 총선을 앞둔 공천과정에서 재연됐다.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포함, 한나라당 공천이 친이(親李)계 위주로 이루어졌다. 이에 반발한 친박계 인사들이 탈당했고 그들은 영남권에서 약진했다. 이 같은 민심의 흐름은 6ㆍ4 재보선에서도 나타나 한나라당의 패배로 귀결됐다. 대통령의 독주에 대한 국민의 경고였다.
가장 충격이 큰 사건은 촛불집회였다. 국민 동의절차 없이 밀어붙인 미국 쇠고기 수입협상으로 전국은 들끓었다. 이 대통령은 두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반성했지만 이후에도 종교편향 문제, 남북관계 경색, 낙하산 인사 및 언론장악 논란 등이 계속 불거졌다.
특히 촛불정국에서는 국민들이 직접 나서 대통령과 전선을 형성했다. 당연히 국가적 에너지가 많이 소진됐고 대통령의 지지도는 내리막이었다. 이 과정을 복기해보면 국민이 지지를 그토록 빨리 거둬들인 배경에는 이 대통령의 독단적인 국정운영, 의욕과잉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혼자만 뛰었던 것이다.
내각이나 공직사회는 물론이고 여당과 참모진도 따라가지 못했다. 달리 말하면 정부의 여러 시스템들을 유기적으로 조합하고 이끌지 못했던 것이다. 내각과 참모들을 보이지 않았고, 여당도 무기력하게 돼 대화정치, 의회정치는 실종됐다.
여당인 한나라당 내에서도 친이, 친박의 갈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이 대통령이 아무리 책상을 치며 호통을 쳐도 신통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데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은 한 때 화합정치로의 변화를 고민한 듯 하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다시 돌파와 드라이브를 택했다.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가 역설적으로 기회를 다시 준 것이다.
위기가 심각할수록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되는 상황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초반과는 다른 것은 지금은 한나라당, 내각, 청와대 참모진들이 이 대통령의 돌파노선을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있다는 점이다. 공직사회의 인적 개편, 한나라당의 한미 FTA 비준동의안 단독상정에서 팀 플레이를 이룬 돌파노선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경제위기가 만들어준 상황은 한시적인 기회다. 만약 일정 기간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국민들이 어느 순간 인내심을 던져버리고 더 큰 저항과 반발로 나올지 모를 일이다. 따라서 지금 이 대통령은 위기이자 기회인 '양날의 칼' 위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