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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치팅 컬처' "돈과 성공 위해선 무엇이든…" 거짓에 봉쇄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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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치팅 컬처' "돈과 성공 위해선 무엇이든…" 거짓에 봉쇄된 사회

입력
2008.12.2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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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캘러헌 지음ㆍ강미경 옮김/서돌 발행ㆍ420쪽ㆍ1만8,000원

FUD. 지금 미국에서 쓰이는 신조어다. fear, uncertainty, doubt의 앞 글자가 합쳐졌다. 원래 IBM사에서 만들어진 말로 공포, 불확실성, 의혹 등을 조장해 상대 회사의 제품을 깎아내리는 마케팅 전술을 뜻한다. 여기서는 네거티브 전략, 인신공격 등 동원될 수 있는 수단은 모두 다 쓰인다. 현재 미국, 아니 자유시장경제의 세계관을 적절히 압축해 보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수한 아메리칸 드림은 파산했다는 의미로, 미국에서 쓰이고 있는 말이다.

<치팅 컬처> 의 저자는 미국의 공공정책 연구기관인 데모스(Demos)를 설립한 정치학자다. 그에 따르면 FUD의 메커니즘은 이렇다. "오늘날 미국에서 급증하는 속임수는 부자들의 오만과 보통 사람들의 냉소주의, 사회의 깊은 불안과 절망을 반영한다."(9쪽) "시장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사회 현실을 반영한다. 먼저 개인주의가 극심한 이기주의로 변했고, 돈이 사람보다 더 중요해졌다. 경쟁은 훨씬 더 치열해졌으나 약자에 대한 배려는 줄어들었다,"(136쪽)

물론 미국 사정이다. 그러나 과연 그뿐일까. 책 중의 '미국'을 '한국'으로 바꾼다 하더라도 그에 대해 반기를 들기는 힘들다. 이제 세계는 바야흐로 세계화의 이데올로기, 즉 시장과 성공이란 키워드로 단단히 봉합되고 있으니까. 한국은 거기 이르는 모든 과정을 압축적으로, 매우 속도감 있게 체험했을 뿐이다. 이 책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표절과 사기 스캔들로 찢겨진 미국의 출판ㆍ언론계가 좋은 예다. 자기 신문사의 내부 비리를 다루는 원고를 써서 수십만 달러에 달하는 선인세를 챙겨 갑부 명단에 오른다. 그 달콤한 열매를 향한 노력은 이제 출판계와 언론계의 단골 메뉴로 자리잡았다. 자유시장의 도덕률의 확산은 결국 사기의 유혹에 도달한다. 경쟁이 미덕이라면, 탐욕도 미덕이라면, 부패와 극한의 행동 또한 미덕인 세상이다.

2002년 뉴욕주 검찰이 투자은행 메릴린치의 탈법 혐의를 잡고 조사를 벌인 결과 스타 분석가가 회사와 결탁, 자신이 '쓰레기'라고 평가한 주식의 매수를 투자자들에게 권했다. 분석가는 벌금으로 400만 달러를 내게 됐지만 그는 이미 메릴린치에서 포상금을 비롯, 2,000만 달러 가까운 돈을 챙긴 뒤였다.

막대한 부를 자랑하는 팝 스타, 스포츠 스타는 신처럼 군림한다. 부자들은 비싼 의학의 힘으로 미모와 육체미를 과시한다. 갑부들의 호사를 지켜주는 것은 패스트푸드로 뚱뚱해진 경비원들이다. 미국은 전례 없을 정도의 부를 누리고 있지만, 그 아래에는 갈수록 높아져 가는 계급의 벽이 엄존한다. 상위 소득자과 나머지 계층 간의 빈부 격차는 막대하다. 최고 호황기인 1979년과 2001년 사이, 고등학교 학력 근로자의 임금은 오히려 하락했다.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승자가 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려 한다. 속임수의 유?은 더욱 더 강해진다. 격차가 심해지면서 사람들은 급료 액수보다 경쟁 서열상의 자기 위치에 더 신경을 쓰는 현상도 벌어진다. 미국인들은 이제 서로를 잘 믿지 않는 것은 물론, 언제나 사기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미(me) 제너레이션'의 개인주의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에 길들여진 시대의 논리적 귀결이다. 책 내용은 미국의 예에 충실하다. 그러나 한국의 독자들은 기시감에 시달릴 각오를 해야 한다. 왜 갈수록 속임수가 판치며, 사람들은 정규 언론보다 '찌라시'에 솔깃해지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책에 나오는 대로 "다들 하는 것(everybody does it)"이라며 마음 한구석의 죄책감을 눅이려 드는 사람들은 승자독식의 논리에 길들여진 이 시대 사람 아닌가.

책의 신빙성은 보도, 통계자료, 학자들의 연구, 여론조사 등 생생한 자료들 덕에 더하다. 저자가 운영하는 웹사이트(www.cheatingculture.com)을 들르면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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