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는 우리사회의 갈등을 심화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특히 이념의 양극화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진보와 보수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고 그들의 팽팽한 대립이 사회불안을 부른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진보나 보수는 그 어느 쪽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지지가 뒤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작년 대선에서 보수정권이 승리했지만 승리의 첫째 이유는 유권자들의 보수화가 아니었다. 1997년 대선에서 '반성할 줄 모르는 보수'에 대한 염증으로 진보정권을 선택했던 유권자들은 10년 후인 2007년 '반성할 줄 모르는 진보'에 대한 염증으로 보수정권을 선택했다.
'이념의 노예'가 아니라 양식을
이명박 대통령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압도적인 지지가 이어지지는 않았다. 집권 1년도 안됐는데 염증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나라당도 대통령도 낮은 지지율로 허덕이고 있다. 새 정부를 바라보는 대다수 국민의 눈초리는 벌써 싸늘해졌다.
보수와 진보가 싸울수록, 국회에서 여야가 사사건건 대립할수록 양측의 인기가 동반추락하고 있다. 얼마 전 만 해도 "나는 보수다" "나는 진보다"라는 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밝히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최근에는 "나는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진보도 보수도 싫다. 양쪽 다 꼴도 보기 싫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보수와 진보가 모두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저런 사람들이 진보라면, 또는 보수라면, 내 입장은 다르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진보냐 보수냐를 따지기 이전에 우선 건전한 상식과 판단력이 있고, 세계를 바라보며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이념운동이나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이념의 노예가 아니라 양식과 능력을 갖춘 정치세력에 대한 갈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으니, 또는 진보라도 좋고 보수라도 좋으니, 제발 성숙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나와달라는 것이다. 속단하기 어렵지만 다음에 정권을 잡을 세력은 보수나 진보를 뛰어넘은, 높은 안목과 실력과 도덕성을 갖춘 세력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군사독재를 견디기는 참으로 힘들었다. 국민은 절망과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수준 낮은 정치를 견디는 일도 독재정권 견디기 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요즘 새로 경험하고 있다. 패싸움으로 세월을 보내는 국회를 보면서 국민은 절망과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아무리 봐도 저 사람들이 생산적인 정치를 할 날이 쉽게 올 것 같지 않다.
정권을 잃은 진보세력은 뿌리가 흔들리는 위기를 맞고 있다. 여당과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아무리 내려가도 민주당이나 진보세력에 대한 인기는 바닥에 머물러 있다. 대다수 국민은 진보세력을 아예 대안으로 생각조차 안하고 있다. 반독재 투쟁을 하던 시절에 머물러 있는 구식 전략, 권력과 돈에 길들여져 부패했다는 비난 등을 극복하지 못한 채 그들은 앞으로 나갈 방향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
보수정권의 '잃어 버린 1년'
보수 진영도 웃을 처지는 아니다. 국민은 10년 만에 다시 집권한 보수진영이 별로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다. "도덕성보다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이 보수진영의 '집권철학'이었는데, '고소영-강부자 내각' 등에서 도덕성도 능력도 없는 인물들이 중용되면서 그 집권철학은 웃음거리가 됐다. 지금 보수파들의 전성시대가 온 것 같지만 진보정권 10년 동안 국민의 의식도 크게 진보화했다는 사실을 잊은 채 구식 보수에 안주한다면 미래가 있을 리 없다.
진보정권 집권시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모독했던 이명박 정부는 이제 잃어버린 자신의 1년을 인정해야 한다. 진보도 보수도 쇠퇴하는 것을 국민이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보수진영은 정권을 잡은 이상 잘 해야 한다. 그래서 더 이상 세월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장명수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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