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지앵들의 일상과 삶을 지칭하는 세 단어가 있다. 잠(dodo), 일(boulot), 지하철(metro).
세계화의 속도전이 전 세계 도시인들의 삶을 비슷하게 만들어서 위의 세 가지 단어가 꼭 파리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닌 듯하다. 다만 유독 승용차, 자가용, 게다가 중형이상의 차를 선호하는 일부 대한민국 국민들은 좀 예외 일 수도 있겠다.
서울 강남의 명품관이 즐비한 거리에는 진열된 상품도 상품이지만, 건물 자체를 감상하는 것으로도 눈요기가 된다. 다만 최악의 꼴불견은 거의 모든 건물 앞에 승용차들이 즐비하게 주차 되어 건물은 물론이거니와 진열된 상품까지도 가리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버젓이 인도 위에...
물론 고객은 왕이시니, 고객님들에게 최대한 쇼핑 편의를 제공하려는 업주들의 배려를 모르는 바 아니다. 인도를 점령한 승용차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다. 술 마시러 가면서도 차를 가져가는 국민들이니까. 뭐 이것도 대리기사들의 생계를 위한 것이라면 넘어가야겠다. 위의 예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불황 따위를 체감하려면 차에서 내려와야 할 텐데, 그럴 리가 없으므로 결국 불황도 우리 다수만이 겪어 내야 할 현실일지도 모른다.
일하고 자고 지하철로 오이도도 가고, 인천 바다도 가고, 그래서 다시 일할 힘을 얻고, 일하려면 잘 자야 하고, 지하철을 타고 일터로 가고...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의 삶에 관해, 예술에 관해, 영화에 대해 토론하다가 커피 집을 나오면, 대리주차를 해준 친구들이 역시 건물 앞에 차를 대기시켜준다. 아니, 커피 값을 계산할 때, 무전기로 고객님이 나가신다고 차 번호를 불러준다. 열띤 토론을 하던 감독이 멋진 차를 타고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다.
차가 없는 미술가가 말한다. "차 안에 앉아서 어떻게 세상을 보겠다는 거야, 걸어 다녀야 사람들을 보고, 바람도 느끼고, 도심이지만 하늘도 보고 하는 거 아냐? 창작하는 사람들이 몸이 편해지면 안 되는데..."그리곤 씩씩한 걸음으로 골목을 돌아 나간다.
영화를 만드는 일은 결국 사람들의 모습을 어떻게 그릴 것이냐의 문제라고 간단히 얘기 할 수도 있다. 직관력이 뛰어나 언제나 사람들을 관찰하거나, 물끄러미 바라보지 않아도 사람을 잘 그리는 감독과 작가들이 있다. 축복할 만 한 일이다. 그런데 직관도 키울 수 있다면, 그건 사람과 사물을 관찰하고 느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겨울 외출 때 승용차를 타고 나가고픈 유혹을 느낀다. 창문을 열어 바깥 공기를 타진해 본다. 너무나 투명한 겨울 아침의 햇살이 눈을 찌르고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찌른다. 잎사귀를 다 떨어뜨리고도 당당히 서 있는 겨울나무 가지사이로 햇살이 작렬한다.
옷을 차려 입고 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두르고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간다. 벌써 가게 문을 열고 가게 앞을 청소하는 아저씨, 김밥을 말아 팔러 나온 아주머니, 등교하는 학생들, 추위와 상관없이 초미니 스커트를 차려 입은 맵시녀, 지하철 입구에서 열심히 아침신문을 나눠 주는 사람들을 본다. 지하철 안에는 조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책을 읽는 사람, 화장을 하는 여자, 음악을 듣는 사람 등등... 그렇게 모두들 저마다의 아침을 열고 있다.
이미연 여성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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