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월산의 달빛에 한껏 취했다면 이제 대왕암의 해를 맞으러 갈 일이다.
대왕암은 바다의 용이 되어서라도 신라를 지키겠다고 한 문무왕의 전설이 어린 곳이다. 대왕암 일출 포인트는 봉길리 해수욕장이다. 대왕암 위로 햇덩이가 솟구친다.
이른 새벽의 해수욕장에 붉은 빛이 번져오자 수십여 명의 일출객들이 카메라 렌즈를 매만졌다. 갈메기는 떼를 지어 앉아 파도를 응시했고 용왕과 문무왕에 치성을 드리는 무속인들도 일출을 기다렸다.
마침내 붉은 하늘을 가르며 햇덩이가 솟구쳤다. 바닥에 앉아 있던 갈메기떼가 해와 함께 날아올랐다. 장엄한 일출의 환희를 날갯짓으로 토해냈다. 수면을 이제 막 벗어나려는 태양은 오메가(Ω)의 모습이다. 바다가 태양을 놓치기 싫어 잡아 당기는 걸까, 해가 바다를 끌고 떠오르는 걸까. 대왕암에 부서지는 포말도 붉게 물들었다.
봉길리 해수욕장 인근 대본초교 맞은편에 이견대가 있다. 문무왕의 대를 이은 신문왕이 세상을 구하고 평화롭게 할 수 있는 옥대와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하나 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대왕암에서 5분 거리 내륙 쪽으로 감은사지가 있다. 감은사는 문무왕이 세우기 시작했고 아들인 신문왕 때 완성됐다. 감은사란 이름은 문무왕의 위업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신문왕이 붙였다.
신문왕은 감은사의 금당 아래에 대종천과 이어지는 구멍을 팠다고 한다. 용이 된 문무왕이 동해에서 대종천을 따라 절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개의 거대한 삼층석탑이 우뚝 선 감은사지에는 화려했던 금당과 강당, 회랑이 주춧돌로만 남아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다. 삼층석탑의 효시인 감은사탑은 웅장하다. 제일 처음 만들어졌음에도 높이 13.4m로 국내 삼층석탑 중 가장 크다. 단순히 크기만 한 게 아니다. 절묘한 비례의 아름다움에 보는 이들은 탄복하고 만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에서 감은사 답사기를 맘대로 쓰게 해준다면 원고지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쓰고 싶다고 했다.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 나의>
감은사지 바로 앞 들녘은 예전엔 바다와 대종천이 만나는 큰 하구였다. 천년이 넘은 시간에 땅은 솟았고 대종천 물길은 지금처럼 오그라들었다.
대종천 이름에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1235년 몽고군의 제3차 침입 때다. 경주를 불바다로 만들어 황룡사 구층탑을 태워버린 몽고군은 황룡사의 대종이 탐이 나 본국으로 가져갈 계획을 세웠다.
무게가 에밀레종의 4배나 되는 대종이라 바닷길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감포 앞 바다로 대종을 운반하다가 봉길리 해안에 다 와서 그만 물 속에 빠뜨렸다. 대종이 가라 앉은 뒤로 이 물길을 대종천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대왕암 인근의 감포항은 전설이 아닌 실제의 삶이 펄떡이는 공간이다. 동해 남부의 중심 어항이다. 대구나 경주 사람들이 가장 가깝게 만나는 바다가 바로 감포였다. 지금은 대구-포항 고속도로가 뚫리며 많은 손님을 포항에 빼앗겼다.
하지만 이른 아침의 감포는 여전히 활기가 넘친다. 찬바람 속에서 오징어를 상자째 내리는 손길이 분주하고, 항구를 오가는 배들로 시끄럽다. 바다의 활력이 몸으로 전해져 오는 공간이다.
■ 여행수첩/ 경주
● 경주에서 보문단지를 지나 4번 국도를 타고 감포 방향으로 향한다. 불국사와 감포의 갈림길에서 감포쪽 도로를 타면 덕동호를 지나 굽이굽이 산길을 만나게 된다. 추령터널을 지나 약 10km 내려가면 안동삼거리가 나온다. 이 갈림길에서 좌회전 해서 약 4.5km 계속 오르면 기림사다.
● 기림사에서 대왕암으로 향하는 길은 4번 국도를 타고 가다 양북에서 929번 지방도로를 타고 오른쪽으로 꺾어져야 한다. 가는 길에 감은사지를 지난다.
● 감포 이견대 밑에 횟집타운이 형성돼 있다. 이중 '감포복어 대게 횟집'을 추천한다. 자연산 횟감을 취급하는 곳이다. 다양한 해초를 곁들여 먹는 회의 맛이 색다르다. 얼큰하게 끓여낸 이 집의 물곰탕은 대왕암 일출을 맞느라 얼어붙은 몸을 사르르 녹여준다. (054)775-7810
● 경주 보문단지는 온천관광단지다. 대명리조트의 아쿠아월드 등에서 따끈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경주=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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