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자유의 물결, 보수의 가치가 되살아났다." "뉴라이트와 한나라당은 목표가 똑같다." 지난달 7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 3,273㎡(990평) 규모의 행사장에는 '뉴라이트 찬가'로 가득했다. '우파가 만든 최초의 자생적 시민단체'인 뉴라이트전국연합 출범 3주년을 기념하는 행사 자리였다.
박희태 대표를 비롯해 이상득 심재철 정두언 전여옥 의원 등 한나라당 현역의원 15명과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 김덕룡 국민통합특보, 오세훈 서울시장 등이 참석했다. 재향군인회, 바르게살기운동, 선진화시민행동 등 40여개 보수단체도 결집했다. 행사장의 열기는 "3년 전 오늘 과감하게 선진통일한국을 위해 앞장 선 여러분들의 열정을 생생히 기억한다"는 이 대통령의 축전이 낭독되자 최고조에 이르렀다.
세(勢) 결집하는 보수
두 번의 대선패배를 딛고 돌아온 보수들이 주특기인 '반공(反共)'은 물론 "10년간 왜곡된 시각을 바로잡겠다"며 교육, 언론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세력을 결집하고 있다. 이른바 '좌파'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시민단체에도 속속 '대항마'를 만들고 있다. 특히 뉴라이트 그룹의 대표격이 뉴라이트전국연합과 국민행동본부 등 올드라이트(Old Right)의 동거가 눈에 띈다.
보수의 결집은 교육 현장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지난 5일 전교조 4,930명의 명단을 공개한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이 대표적이다. 올바른교육시민연합, 뉴라이트학부모연합, 서울시자유교원조합 등 20여개 이상의 보수 단체들이 결집했다. 근현대사 교과서 좌편향 시비의 배후에도 바로 이들이 존재한다. 지난달 26일에는 '교육선진화'를 내세운 대한민국교원조합을 창립해 전교조 대항 체제를 갖췄다.
진보단체가 주도하던 언론운동에서도 보수 결집이 뚜렷하다. 9월에는 방송시장 자유화와 진보성향 주간지 <미디어오늘> 광고주 불매운동 등을 기치로 내건 미디어발전국민연합이 출범했다.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들, 자유언론인연합,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 등 35개 보수단체가 뭉쳤다. 39개 진보단체가 모인 언론개혁시민연대와 맞먹는 매머드급이다. 또 227개 보수단체는 '한미FTA비준촉구범국민연합'을 결성했다. 미디어오늘>
지난 10일에는 "심각한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보수단체 100여 곳이 함께 '품앗이' 후원행사를 가졌는데 행사 시작 전 220여개 좌석이 꽉 찼고 50여명은 서 있을 정도였다.
정권 업고 기업에 손 내밀고
지난 대선에서 합리적 대안세력이라는 이미지로 정권교체에 기여한 뉴라이트가 '정치세력화'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현안들에 대한 합리적 정책 대안이나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정부 정책의 나팔수 역할만 한다는 지적이다.
현실정치 참여도 논란이 되고 있다. 뉴라이트 출신으로 여의도에 입성한 사람은 신지호, 장제원, 나성린 의원 등 6명 정도다. 이석연 법제처장, 제성호 인권대사 등 10명 안팎은 행정부에 진출했다.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한 사람도 40명이 넘는다. 여의도 입성을 꿈꾸는 '꾼'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보수단체의 정치권 유착은 정부여당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13일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보수 성향의 민족통일중앙협의회에 7년 만에 3억5,000만원의 지원금이 추가됐다. 이 단체를 포함한 시민사회단체 200여 곳의 연합체인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 정부보조금 3억1,000여만원보다 많은 액수다.
지난 10일 보수단체 공동 후원행사에서 기업체 350여 곳에 후원금 입금계좌를 적은 초청장을 발송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국민행동본부는 "지금 시대에 이것을 압력으로 생각할 기업은 없다. 지난 10년간 종북ㆍ반헌법 단체들은 정권의 비호 아래 엄청난 후원금을 받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참여연대가 3년 전 '후원의 밤'을 열 때 "고단수 앵벌이"라고 비판했던 것을 떠올리면 앞뒤 안 맞는 행동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낡아버린 뉴라이트의 깃발
한때 기대를 모았던 뉴라이트 역시 시장주의에 기반을 둔 '새로운 보수'를 내세웠다는 점 말고는 이름에 걸맞은 콘텐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규모 면에서 가장 큰 뉴라이트전국연합이 국민적 비판에 직면했던 사안들에서 공공연히 이명박 정부를 옹호하고 나서면서 뉴라이트의 행동반경을 좁혔다는 지적이다. 지난 6월 동아시아연구원의 '2008 파워조직 25곳 평가'에서 뉴라이트의 신뢰도는 지난해 10위에서 23위로 곤두박질쳤다.
■ 뉴라이트 자성론
"게으르고, 이념으로 윽박지르는 보수로 전락하고 있다." "뉴라鉗?운동이 '뉴(new)'를 잃었다."
뉴라이트 운동을 지지해왔던 보수 학자들조차 최근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보수 단체들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권력 지향적 행태' 때문이다.
김일영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는 "진보가 위기를 맞은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부터 인데, 지금의 보수 또한 그런 전철을 밟고 있다"면서 "정책적 조언은 사라지고 이권이나 취하고 자리 하나 얻어보려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반공단체 등 기존 보수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한 초기 뉴라이트의 정신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뉴라이트 운동을 이끌던 인물들이 정치권으로 빠져나가자, 뉴라이트 그룹 자체가 동력을 잃고 우왕좌왕하며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는 "지난 대선 때부터 보수 내에서 '대통령은 도덕성보다 능력이 중요하다'는 논리가 받아들여지면서, 보수진영은 도덕적 취약성이라는 약점을 가지고 출발했다"면서 "보수진영은 여전히 이 같은 내생적 도덕적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보진영과 마찬가지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내놓는 대안조차 구시대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강석훈 교수는 "뉴라이트 운동이 정책적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함에 따라 기존 보수의 개혁을 촉구했다는 점 말고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서 "보수진영이 큰 그림을 제시하지 못한 채 (토목공사 등으로) 땅 파서 성장률만 높이자는 주장만 하고있다"고 비판했다.
김일영 교수 역시 "뉴라이트 운동이 한국의 담론 지형을 민주주의 담론에서 자유주의 담론으로 변화시키는데 공헌한 것은 인정하지만, 새롭고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상돈 교수는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적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인권, 환경, 보건, 노동 등 그 동안 보수가 소홀했고 수동적이었던 아젠다에 대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 보수 지형도
연이은 대선 패배와 탄핵 역풍에 이은 총선 완패로 보수 위기론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4년. 자유주의연대는 뉴라이트 깃발을 가장 먼저 올렸다. 그 해 11월 창립한 자유주의연대는 기존 보수보다 혁신적이지만 중도에서는 확실히 오른쪽인 '혁신우파'의 개념을 설파하며 새로운 사회세력으로 등장했다. 여기에 일부 언론이 '뉴라이트'라는 세련된 이름을 붙여 주며 호응했다.
이후 잇따라 탄생한 뉴라이트그룹의 단체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뉴라이트라는 큰 흐름으로 묶이지만 주장과 성향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최초로 뉴라이트 깃발을 들고 나온 자유주의연대는 이후 만들어진 교과서포럼, 뉴라이트싱크넷,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의료와사회포럼,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등과 함께 뉴라이트네트워크를 형성했다.
당초 뉴라이트네트워크에 참여하기로 했던 김진홍 목사는 입장차를 확인하고 독자적으로 뉴라이트전국연합을 탄생시켰다. 이명박 대통령의 20년 지기인 김 목사가 주도한 이 조직은 설립당시 회원만 11만명에 이르렀고 183개 지역조직과 9개 직능조직을 갖춘 대중 조직이 됐다. 여기에 2006년 선진화국민회의, 한반도선진화재단 등 선진화세력이 보수혁신 운동에 가세했다.
올드라이트라고 불릴만한 정통우파 단체들도 2004년부터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대령연합회와 국민행동본부, 그리고 이들의 연합체인 국민협의회는 그 해 10월 4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30만명이 참가한 국보법사수국민대회를 열어 세를 과시했다.
이후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을 거치면서 반(反)진보 보수연합에 힘을 보탰다. 특히 뉴라이트와 함께 촛불집회를 반대하고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100여개 보수단체가 모인 후원회 행사에도 참여하는 등 뉴라이트와의 연대에도 적극적이다.
뉴라이트의 본류였던 자유주의연대와 통합 후 시대정신으로 이름을 바꾼 뉴라이트재단은 최근 '보수와 진보의 공생모델'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름에서 뉴라이트를 지울 만큼 보수에 새로운 사상을 제공하기 위해 고뇌하고 있다.
장재용 기자 jyjang@hk.co.kr
강희경 기자 kbstar@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