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이라도 특혜를 받거나 뇌물을 준 일이 있으면 당장 사업을 접겠습니다."
수도권 지방자치단체의 '전봇대 행정'에 시달리다 부도 위기를 맞은 한 주상복합 시행사가 이례적으로 결백을 밝혀달라며 스스로 사법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경기 성남시 수정구 신흥2동에서 주상복합을 추진하는 ㈜엔에스아이 안철수(52) 대표는 17일 "성남시가 특혜 여론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4년에 걸쳐 사업 승인을 반려했다"면서 "과연 로비자금이나 특혜를 주고 받은 사실이 있는 지 검찰이 수사를 해 밝혀줄 것을 요청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시의 억지 요구로 이미 1,300억원 대의 땅을 무상 기증한 이 회사는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수사의뢰서를 접수할 계획이다.
이 회사와 성남시와의 질긴 악연은 2003년 시작됐다. 모든 악연이 그렇듯이 출발은 좋았다. 안 대표는 경매에 나왔다 유찰된 1공단 내 6,000여㎡의 땅을 한국토지공사로부터 싼 값에 매입하면서 이 땅을 포함한 공단 전체(8만4,200㎡)가 주거 및 상업지역으로 용도변경 된다는 걸 확인했다.
안 대표는 투자자를 모집하고 회사를 설립해 2004년부터 본격적인 부지 매입에 나섰다. 이미 성남시가 그 같은 용도로 개발하겠다며 1999년 지구단위계획을 고시하고 2002년 수도권정비 심의까지 받았기 때문에 군인공제회나 HSBC 등도 선뜻 자금을 빌려줬다. 이 회사는 오를 대로 오른 땅값에도 불구하고 3,930억원을 들여 2005년 땅 매입을 완료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난관이 시작됐다. 가장 어려웠던 부지 매입을 끝내고 개발 청사진을 마련할 꿈에 부푼 이 회사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2006년 재선에 나선 이대엽 성남시장이 "해당 부지의 3분의 1을 받아내 공원으로 개발하겠다"고 공약한 것이다.
안 대표는 엄연한 사유지를 뺏겠다는 발상 자체가 기가 막혀 일소에 붙였지만, 공무원들의 태도는 그게 아니었다. 2005년부터 올 10월까지 무려 7차례의 사업승인 신청이 모두 반려됐다. 반려 때마다 "부지 전체를 공원으로 개발하라는 여론이 있다" "민원을 먼저 해결하라" "시 방침과 맞지 않는다"는 등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시장 공약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부지의 32.5%를 제공하겠다는 제안마저 거부 당한 안 대표는 결국 지난달 이 시장 공약대로 정확히 33.3%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한 끝에 일단 제안서 접수를 마쳤다.
이 과정에서 이 회사가 빌린 3,430억원은 5,000억원으로 불었고 지금도 하루 1억5,000만원의 이자가 쌓이고 있다. 그런데도 시는 도시계획자문위원회 일정조차 잡지 않고 있다.
안 대표는 "대통령이 나서 전봇대를 뽑으라고 했지만 지방에서는 여전히 씨알도 안 먹힌다"면서 "차라리 로비자금을 뿌릴 걸 하는 후회가 지금 하루 열 번도 넘게 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성남시 관계자는 "해당 신청서에 보완해야 할 사항이 있어 반려한 것일 뿐 시장 공약과는 관련이 없다"면서 "승인 여부는 석 달 안에 결정하면 돼 도시계획자문위 소집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범구 기자 goguma@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