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등이 흔해지면서 백열전등은 빛보다 열의 효능을 많이 발휘했다. 어릴 적 방에서 병아리 몇 마리를 키웠는데, 추운 날 골판지 상자로 만든 그 놈들 집을 데워 주려고 백열전등을 안에 켜 놓았다가 방을 홀랑 태운 기억이 있다.
각목으로 촘촘히 통을 만들어 그 안에 백열전등 하나 켜놓고 이불 속에 넣고 자면 한겨울 추위도 거뜬히 이길 수 있었다. 전기 사용량 중 5%를 빛을 내는 데 쓰고 95%를 열에너지로 소모하는 백열전구가 2013년까지 모두 사라진다.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는 말도 있지만 독서를 위해 장작불을 활활 피울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 백열전등이 처음 불을 밝힌 것은 1887년 3월 6일 경복궁에서. 고종황제의 침실이었던 건청궁(乾淸宮)과 명성황후의 거실이었던 곤녕각(坤寧閣)의 방과 마루에 한 개씩 매달았다. 1882년 5월 인천 제물포에서 조미(朝美)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뒤 이듬해 미국에 파견된 보빙사(報聘使) 일행이 갖고 온 '깜짝 놀랄 서양문물 1호'였다. 중국 일본보다 2년 여 앞섰다. 촛불과 등잔불만 보았던 상궁들은 "백주보다 더 밝은 휘황한 불빛"이라고 감탄했다. 전구나 발전장비 곳곳에 '의대순(義大淳)'이란 표기가 있었는데, '에디슨'의 한자 표기였다.
■"전구"하면 곧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7~1931)을 떠올리지만 그가 전구를 처음 발명한 것은 아니다. 그가 태어나기 한참 전인 1800년대 초부터 이런 저런 전등이 개발됐다. 유리로 싸인 횃불 수준인 아크등(arc燈)을 시초(1809년)로, 병 속에 전기램프를 켠 형태인 밀봉전구도 있었다. 다만 내구성이 없고 값이 비싸 귀족이나 부유층이 잠시 호사용으로 사용하는 정도였다. 이것을 에디슨이 40시간 이상 견딜 수 있도록 만들었고(1879년), 소켓-스위치-퓨즈-배전반-발전기 등을 차례로 개발하며 전기회사(GE)까지 세워 일반 가정에 보급했다.
■에디슨의 진짜 발명품은 전구 속 필라멘트. 전기가 흐르되 잘 통하면 안 되고(그래야 열과 빛이 발생), 가늘되 오래 견뎌야 한다. 이러한 '탄소 성분의 실'을 만들기 위해 백금에서 자신의 머리카락까지, 1,000번의 실험을 했다. 결국 '40시간짜리 전구'의 필라멘트는 일본의 대나무를 수입해 만든 것이었고, 이 '대나무 전구'는 10년 후 텅스텐 필라멘트가 개발될 때까지 세계의 밤을 밝혔다. 실용주의 대가였던 에디슨의 발명품이 100여년 만에 에너지 절약의 흐름에 밀려 퇴출된다. 실용보다 무서운 게 효율이고, 그보다 더 한 게 에너지 절약이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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