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해도(海圖)에도 나오지 않는 미지의 바다로 항해하기 시작했다."
FRB의 금리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이사회(FOMC)가 16일 기준금리 운용범위를 '0~0.25%'로 낮추고 장기국채나 모기지 채권을 무제한 매입하겠다는 극약처방을 내놓자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조치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정책실험이라며 이렇게 표현했다.
FRB가 이렇게까지 나온 것은 달러를 무제한 찍어 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 과도한 부채에 시달리는 주택 소유자나 기업의 파산을 막겠다는 뜻이다. 채권 이자율을 제로 수준으로 묶어 대출을 원활하게 하고 소비를 촉진하겠다는 의지도 담겨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를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 당시 일본 중앙은행이 구사했던 '양적 완화' 정책과 유사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FRB의 관계자는 "당시 금융기관에만 자금을 공급한 일본과 달리, FRB는 비금융부분에 직접 신용공급을 할 것"이라며 두 정책의 차별성을 드러내려 했다. 일본보다 더 적극적으로 돈을 풀어 디플레이션을 막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61년 만에 최대폭으로 떨어지는 등 디플레이션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 FRB가 장기국채나 모기지 채권 매입을 위한 무제한 달러 공급을 선언한 것은, 디플레이션이 본격화할 경우 이를 해결할 정책이 거의 없다는 초조함 때문이다.
1930년대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정립한 '실질금리=명목금리-물가상승률'이라는 '부채 디플레이션' 공식에 따르면 만약 물가가 떨어져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로 전환하면 중앙은행이 명목금리를 제로로 낮춰도 채무자의 이자부담이 끝없이 올라 줄도산으로 이어진다. 특히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이 1978년 118%에서 2008년 290%까지 증가했기 때문에 디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 미국 경제에 닥칠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FRB의 금리결정 소식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금리를 제로수준으로 떨어뜨림으로써 경기침체에 대처할 정상적인 금융정책이 소진된 만큼,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확대를 통해 이를 보충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FRB가 달러를 무제한 찍어내면 디플레이션을 막을 수는 있을까. FT의 수석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아마 그럴 것"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디플레이션 공포가 진정되면 이번에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밀려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단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면 긴축정책이 불가피해지고 국민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제로금리 정책으로 달러가치가 하락할 것을 감안하면 인플레이션 극복 과정이 더욱 가혹해질 수 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가장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화했다"며 "난국을 극복하려면 지혜를 모아야 겠지만 행운도 필요하다"고 비관적으로 말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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