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ㆍ남미와 카리브해 국가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여 일치된 모습으로 미국ㆍ유럽의 중남미 아메리카 정책을 비판했다. 특히 전통적으로 이 지역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온 미국을 따돌린 채 열린 사상 첫 정상회의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브라질 북동부 휴양도시 코스타 도 사우이페에서 16일부터 이틀 일정으로 진행되는 제1회 중남미ㆍ카리브 정상회의가 그 무대다.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12개국 전부, 멕시코를 비롯한 중미지역 국가 대부분, 쿠바를 위시한 카리브해 지역 국가 등 33개국 정상과 정부 대표들이 참석했다.
형식적으로는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남미국가연합, 리우그룹, 안데스공동체(CAN), 중미통합체제(SICA), 카리브해공동체(Caricom), 중남미통합협회(Aladi), 미주를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 등 중남미권에 존재하는 국제기구와 관련된 국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방식을 취했다.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아메리카 대륙의 모든 국가 정상이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특히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2년 전 권좌를 친형인 피델 카스트로에게 넘겨 받은 후 첫 국제무대 등장이다. 참가국들은 미국을 향해 46년 동안 계속된 쿠바에 대한 경제제재를 철회하라고 요청하면서 카스트로 의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회의의 큰 형님격인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오바마 당선자가 쿠바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등 외교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AFP통신은 "(미국의 압력으로 국제적으로 고립돼 있던) 카스트로가 회의에 참석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상징적 승리의 의미가 크다"고 분석했다.
참가국들은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포클랜드 제도 문제에 대해서도 아르헨티나를 적극 편들었다. 메르코수르 회원국인 브라질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은 성명을 통해 "포클랜드 제도에 대해 정당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아르헨티나 주장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메르코수르 준회원국인 볼리비아 등 5개국도 성명에 동참했다. 1982년 영국은 포클랜드 제도를 침공한 아르헨티나 군을 격파하고 이 땅을 지배하고 있다.
참가국들이 지역 문제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더 이상 미국의 우산 아래 있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셀소 아모링 브라질 외무장관은 "중남미ㆍ카리브 정상회의는 중남미문제를 중남미 스스로 결정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공표하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아모링 장관은 사상 처음으로 미국 참여 없이 정상회의가 개최됐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200여년 전 중남미 지역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후 또 한번의 독립선언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반미주의자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이번 회의를 통해 중남미 지역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는 종식됐다"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지역통합과 개발문제,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공동대응 방안, 기후변화 및 에너지와 식량 안보 등에 대해 폭 넓게 의견을 교환했지만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실질적인 소득은 없었다는 평가다. 그러나 중남미 통합이라는 오랜 이상을 확인하는 상징적인 의미는 크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강철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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