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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는 보수·무기력 진보/ "MB정부 들어서며 끝없는 추락" 길 잃은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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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는 보수·무기력 진보/ "MB정부 들어서며 끝없는 추락" 길 잃은 진보

입력
2008.12.18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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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참 답이 안 보인다."(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운동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암담하다."(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한숨만 나오네요."(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진보개혁세력의 지리멸렬한 무력감을 두고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금융위기와 경기불황, 종합부동산세 논란, 예산안 처리 등 굵직굵직한 각종 현안에서 범 진보진영이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하고 국민적 신뢰마저 잃으면서 "진보진영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의 외면으로 이대로 가다간 '진보의 대(代)가 끊길지 모른다'는 비관적 전망마저 나온다. 낡은 아젠다, 도덕성 추락, 정책적 대안 부재 등의 자성과 함께 진보진영을 재편ㆍ재정립해야 한다는 쇄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MB정부 실정(失政)에도 속수무책

참여정부 시절의 민심 이반과 보수로의 정권 교체 등으로 범 진보진영의 위기가 제법 오래 전부터 거론됐지만 최근 상황은 보다 심각하다. MB정부가 '강부자 내각'을 시작으로 쇠고기 졸속협상, 오락가락 환율정책, 금융위기 뒷북대응 등 거의 1년 내내 실책을 저질러 국민적 불만이 팽배한데도 진보진영이 반사 이익을 얻기는커녕 동반 추락하고 있어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한나라당의 반토막에도 못 미치는 10% 안팎에서 허덕이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도 2~4%로 바닥을 기고 있는 반면, 무당파층은 50%선을 넘어섰다. 국민들이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 아무리 커도 진보개혁진영을 대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진보적 시민단체들도 최근 환경운동연합 간부의 공금 횡령 사건 등으로 도덕적 권위가 무너지며 위기를 맞긴 마찬가지다. 특히 지난 정권과의 밀회 아래 정부 지원이나 기업 후원금에 의존하는 타성에 젖어 '시민 없는 시민운동'의 허약체질을 개선하지 못한 것도 정권교체 이후 발목을 잡히는 요소가 됐다.

하승창 시민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지난 10년을 거치면서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 휘말려 큰 상처를 입었고 MB정부가 시민단체 후원을 못하게끔 기업을 압박하고 정부 지원도 줄이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대안 부재, 낡은 운동

이 같은 위기가 무엇보다 진보진영 자체의 대안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참여정부가 신자유주의적 틀 안에서 사회안전망 확대를 꾀했지만 부동산 가격 급등에다 양극화 심화 및 중산층의 몰락으로 민심을 잃었고,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는 진보정당 역시 구호만 요란할 뿐 뚜렷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수적 인사가 뒤섞인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지역적 기반만 다를 뿐인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인상을 넘지 못하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은 자신들의 이념 자체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다 보니 정책적 대안도 불투명하다.

진보진영이 현장과 괴리돼 대중의 자생적 운동에도 뒤쳐지고 있다는 지적도 뼈아프다. 고병권 '연구공간 수유+너머' 대표는 "민주노총이나 전교조 등이 상층부 조직 강화에만 힘을 쏟아와 실제 현장에서 제기되는 수많은 요구와 흐름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며 "80년대 민주화로 형성됐던 운동기구들이 이젠 낡았으며 새로운 운동형식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실제 올 여름 한국을 들썩이게 했던 촛불집회는 디지털세대의 자생적 움직임으로 촉발됐고 이들의 변화무쌍한 흐름에 진보진영은 겨우 뒤따라가는 형국이었다.

'반미'나 '민주' 등 낡은 아젠다에 집착하다 보니 젊은 층에 대한 호소력도 떨어지는 실정이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세상은 변하는데 옛날 얘기만 하고 있으니 젊은 층에 설득력이 있겠느냐"며 "5~10년쯤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데, 자기 변신과 혁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진보의 몰락은 보수에도 위험

제도권내 진보개혁세력의 약화는 보수 진영에도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현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만을 해소할 합법적 통로가 막힌다는 점에서 대의민주제 자체의 위기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고 대표는 "내년에 경제위기가 심화돼 실업자가 쏟아져 나와 제2의 촛불집회가 폭발할 경우 한국 사회가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 교수도 "진보진영이 대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경제적 불만이 폭동화하거나 파시스트적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 걱정이다"며 "진보진영이 바닥에 가라앉을 만큼 가라앉아 아프게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 진보 지형도

진보진영은 현재 크게 진보적 자유주의 그룹, 자주파, 평등파 세 그룹으로 분류되는데, 정당으로는 각각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이 이를 대변한다.

모두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까닭에 범 진보진영으로 불리지만 1980~90년대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각 그룹 간 세계관 및 비전과 전략이 더 이상 한 묶음으로 분류하기 어려울 정도로 벌어진 것도 사실이다.

우선 진보적 자유주의 그룹은 국가를 견제하고 시민사회를 발전시키며 민주주의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반독재민주화 운동의 적자이자 범 진보진영의 주류다. 1980년대 후반 시민사회론의 대두와 함께 창립됐던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환경운동연합 등 진보적 시민단체들도 대략 이 부류다.

정당으로선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집권하며 진보 정권을 탄생시켰지만, 우리사회의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이들 그룹이 여전히 진보냐는 회의적 시각도 없지 않다. 진보-보수가 상대적 개념이긴 하지만 서구 역사에선 자본주의 체제를 보는 시각에 따라 양 진영을 구분해왔기 때문이다.

자주파와 평등파는 80년대 광주민주화 운동을 거치면서 도입된 마르크스주의 혁명사상의 세례를 받았다는 점에서 진보적 자유주의 그룹과는 뚜렷이 대별된다. 이들 그룹은 구 소련 몰락 이후 다양한 사상적 흐름으로 분화됐지만 자본주의 체제의 대안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연대해 '민주노동당'이란 결실을 보게 됐다.

하지만 운동권 시절부터 대립했던 자주파(옛 NL)와 평등파(옛 PD)가 결국 해묵은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올 초 갈라서 각자도생의 길에 올랐다. 민주노동당은 자주파가 장악하고 있으며 전교조를 포함하는 민주노총, 전농, 한국진보연대 등의 단체들도 이 부류에 속한다. 진보신당을 창당한 평등파는 통칭일 뿐 사회민주주의, 정통 마르크스주의, 생태주의, 무정부주의, 탈근대론자 등 다양한 흐름이 혼재하고 있다.

■ 진보 자성론/ "신자유주의 넘는 세계관 제시 못해"

"진보진영 재정립하자!" 1980년대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을 거쳐 민주노동당 창당까지 고단했던 진보정당 건설의 산 증인이자 이론가였던 주대환 전 민노당 정책위원장은 최근 진보진영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세력을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난해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에서 당내 자주파를 비판하고 탈당한 그는, 이후 진보신당에 합류하지 않은 채 독자적인 행보를 모색하고 있다. 다름 아닌 사회민주주의의 길이다. 최근 그가 진보진영 일각의 비딱한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뉴라이트 계열의 심포지엄과 계간지 '시대정신' 등에 적극 참여하며 보수진영과의 대화도 마다하지 않은 것도 '사회민주주의와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란 기반 위에서 경쟁하며 공존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사회민주주의 연대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진보세력은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세계관과 국가전략을 내놓는 데 실패, 어떤 생산적 대안도 제출하지 못하고 무기력하다"며 "사민주의가 좌파 지식인들에겐 재미없고 해묵은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복지 수준이 빈약한 한국에서 진보진영의 현실적 대안은 사민주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진보진영 쇄신의 목소리가 높다. 1993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올해 3월 '성찰하는 진보'라는 책을 펴내고 "진보라는 깃발만으로는 미래가 없다"며 "대안과 능력을 갖추고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민주당에 대해 "10년간 권력자가 되어서 야당으로서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 대중과 어떻게 호흡해야 하는지도 잊어버린 것 같다"고 질타했고, 진보정당에 대해서도 "구호만 있지 정책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안이 없다고 하지만 서구에서 실험된 방법들이 많은데 진보세력들은 이 같은 방안을 모르거나 안 한다"며 "특히 20대들에게 진보의 미래가 달려있지만, 진보세력이 이들의 꿈과 고통을 어루만져주는 정책을 편 적이 없다"고 꼬집었다.

조 교수는 그러나 "우리사회는 아직도 진보의 과잉이 아니라 진보의 과소로 고통받고 있다"며 "진보진영은 정치공학을 버리고 대중과 소통하며 운동의 진정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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