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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월가의 굴욕, 폰지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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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월가의 굴욕, 폰지 사기

입력
2008.12.17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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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20006년 5월 청와대 홈페이지에 강남 등의 부동산시장이 90년 말 벤처 거품을 닮았다며 거품 붕괴를 경고하는 시리즈를 게재했다. '버블 세븐'이란 조어도 이때 만들어졌는데, 청와대는 이에 더해 강남 집값이 '폰지게임'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생소한 이 용어에 대해 청와대는 미국에서 주택 개발붐이 한창이던 1925년 플로리다에서 찰스 폰지라는 사람이 50%의 배당금을 약속하고 투자자를 모집해 나중에 투자한 사람의 돈으로 선 투자자의 배당금을 지불하다가 투자가 끊기면서 들통난 사기극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 당시 정부는 "더 비싸게 집을 팔 수 있다는 투기적 기대가 집값을 마구 뛰게 했지만 조만간 부동산대책이 약효를 발휘하면 그런 기대가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하지만 역풍이 더 거셌다. 정부가 무책임하게 부동산시장 경착륙을 조장하는 저주의 굿판을 벌인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계속 불다가 터져버리는 풍선식 거품(bubble)이 아니라 서서히 가라앉는 맥주식 거품(froth)처럼 연착륙시키겠다는 뜻"이라고 군색한 해명까지 나왔다.

▦ 이런 소동까지 빚은 폰지게임의 비극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 월가에서 80여년 만에 재현됐다. 피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충격으로 빈사상태에 이른 월가뿐 아니라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전 나스닥 증권거래소 의장이 500억 달러 사기의 주범인 것도 놀랍지만, HSBC 노무라증권 등 세계 유수의 기관투자가는 물론, 스티븐 스필버그와 연방 상원의원 등 거액 자산가들이 모두 속아 넘어간 것은 충격이다. 월가 경력 50년의 유명인사가 연 8~12%의 적정(?) 고수익을 제시하니 너도나도 달려든 꼴이다. 내용과 규모는 다르지만 그 사기의 전개양태는 서브프라임 부실의 전후와 크게 다를 것 없다.

▦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대량 환매요청이 없었다면 20년간 이어진 월가의 폰지사기 행각이 훨씬 오래 갔을 것이라고 한다. 안정된 고수익을 좇는 돈은 월가에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생명 사학연금 등 한국 금융기관과 기관투자자들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걸려들었다.

피해액은 1억 달러 정도라지만 뒷맛은 쓰다. 국내에서도 경제위기를 틈탄 다단계 사기가 단순상품을 넘어 첨단 IT산업과 금융업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한다. 돈 만지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세계적 사기를 당하는 판이니 보통 사람들이 이런 유혹에 왜 쉽게 넘어가느냐고 탓할 것도 없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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