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에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들은 하버드대학에 모여 CCJ(The Committee of Concerned Journalists)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우리말로는 '저널리즘을 염려하는 위원회'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이 모임을 결성하게 한 요인은 무엇인가? 위기의식이다. 언론의 상업주의 때문에 저널리즘의 기본 원리가 훼손되고 있는 데다, 그 틈을 타 인터넷을 이용한 새로운 매체가 저널리즘 영역에 돌풍을 일으켜, 정통 저널리스트들로서는 대응책을 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양한 관점ㆍ 이해 반영
이 모임에서는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었지만 결론은 저널리즘의 기본을 충실히 지키는 것 말고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결론을 얻은 CCJ는 좋은 저널리즘을 구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사업을 펴기로 했다. 그 결실이 메릴랜드대학 저널리즘 스쿨과 손잡고 벌이는 '저널리즘 수준 최고화를 위한 프로젝트'(PEJ, The Project for Excellence in Journalism)다. PEJ는 2004년부터 매년 봄에 미국 각급 신문의 저널리즘 수준을 조사해 보고서를 낸다.
PEJ가 저널리즘 수준을 평가하는 잣대는 세 가지가 핵심이다. 첫째, 저널리스트는 기사를 쓸 때 넷 또는 그 이상의 투명한 취재원을 동원해야 한다. 익명의 취재원이 아니라 최소한 직책을 명기한 책임 있는 관계자를 넷 이상 기사에 등장시켜야 좋은 기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둘째, 저널리스트는 기사에 관점의 다원성을 반영해야 한다. 하나의 견해만을 반영하는 기사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되도록 다양한 견해가 기사에 녹아 있어야 좋은 기사로 평가 받는다. 셋째, 넷 또는 그 이상의 이해당사자를 취재해 보도해야 한다. 저널리스트는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을 많이 만나 그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기사를 써야 한다. 종합하자면 미국 저널리스트들은 최소한 네 명 이상을 만나 다양한 견해를 듣고 상이한 이해관계를 기사에 반영하는 것이 좋은 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지표를 제시한 셈이다.
PEJ가 2005년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미국 신문의 종합 1면 기사는 64%가 적어도 4개 이상의 투명한 취재원을 밝히고 있다. 전체 기사 가운데 복수의 관점이 녹아 있는 기사가 76%에 이른다. 신문 기사 가운데 이해당사자 4명 이상을 취재한 것이 39%, 3명 이상을 취재한 것이 58%에 이른다. 2명 이상을 취재한 것이 90%였다니까 미국 신문의 기사는 거의 다 다양한 이해당사자 견해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이런 조사결과는 뉴욕타임스에서 시골의 소형 지역신문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문기사를 망라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등 일류 대형신문만을 대상으로 할 경우 결과는 판이하다. 이를테면 일류신문 기사 가운데 4명 이상의 이해당사자를 취재한 기사는 73%에 이른다. 다른 지표 역시 일류신문은 현저하게 높다.
언론 기본으로 돌아가야
우리나라 신문 기사를 미국의 잣대로 재면 어느 정도일까? 2006년에 고려대 박재영 교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 소재 전국지의 기사 가운데 투명한 취재원 4명 이상을 취재한 기사는 34%에 불과했다. 1면 머리기사 가운데 관점이 다원적인 기사는 42%이고, 4명 이상의 이해 당사자를 포함시킨 기사는 35%였다. 우리 저널리즘의 질적 수준은 최소한 미국의 잣대로는 비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론의 상업주의와 인터넷 매체의 등장은 미국 저널리즘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저널리즘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대응양식은 천양지차다. 우리는 저널리즘의 기본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고, 한편으로 정치권에 줄을 대 이권을 챙기고자 하고 다른 편으로 인터넷 매체를 압박하는 데 온 힘을 쏟는 것 같아 보인다. 실용주의 시대라서 그런 것일까?
김민환 고려대 언론학부교수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