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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오바마 가라사대'의 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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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오바마 가라사대'의 허실

입력
2008.12.17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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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초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청와대는 축하논평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당선인은 변화와 희망, 변화와 개혁이라는 공통된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며 "한미 양국관계의 발전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새로운 미국의 변화를 주창하는 오바마 당선인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제기한 이명박 정부의 비전이 닮은 꼴"이라고 언급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민주당 등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우회전이든 좌회전이든 회전하면 다 닮은 꼴이냐"고 비아냥댔다. 부자들을 위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남발하면서 탐욕스런 월가 자본의 규제와 중산층 복원을 강조한 오바마 당선인과 어떻게 철학을 공유하느냐는 핀잔이다. 시중엔 이를 빗댄 우스개도 적잖이 나돌았다.

여야 '오바마 끌어대기' 망신살

# 파행으로 끝난 국회의 예산심의에서도 희극적 상황이 연출됐다. 민주당이 부자감세, 지방재정, 일자리 대책, 성장 전망치에 대한 세입예산 조정 등을 4대 선결조건으로 내세워 예결위 계수조정 소위를 보이콧할 때다. 민주당은 "새해 예산안을 빨리 통과시켜야 할 정당성과 급박성을 잘 알지만 10일 만에 만들어온 수정예산을 졸속 처리할 수 없다"며 "(여권과 철학을 공유한다는) 오바마 당선인도 최근 '연방예산을 한 장 한 장 한 줄 한 줄 세밀하게 점검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공세를 취한 게 발단이다.

한나라당은 즉각 "오바마 당선인이 경제팀을 가장 먼저 결정하며 '1분도 낭비할 시간이 없다'고 말한 것은 왜 언급 않느냐"고 반격했다. '신중한 신속함'으로 경기부양 대책과 연방예산 정책을 다루겠다는 오바마 언급의 행간을 들여다보면 양측 모두 코끼리 다리 하나씩만 들고 떠든 꼴이다.

# '오바마 가라사대'를 외치는 정치권, 특히 여권의 촌극은 이른바 그가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은 행동할 때"라며 내놓은 '21세기 판 신뉴딜'의 아전인수식 해석에서 정점을 이룬다. 새해 예산 중 24조원 대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대해 야당이 '삽질예산'이라며 대폭 삭감을 주장하자 "민주당이 좋아하는 오바마 당선인도 SOC 예산을 집중 투여해 경기부양을 하지 않느냐"고 들이댄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할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신뉴딜의 머리에 도로 교량 건설 및 보수 등 대규모 국가인프라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대운하사업 부활논란을 낳은 4대 강 정비사업을 '한국판 뉴딜'이라고 당당하게 이름 붙인 연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바마가 굳이 70여년 전의 용어를 다시 꺼낸 배경과 맥락은 전혀 다르다. 우선 뉴딜이 테네시강 유역 개발계획(TVA) 등 대규모 공공투자에 의한 토목공사가 전부인 양 종종 오해되는데, 실제로 그 말은 '새로운 정책, 완전한 전환'을 뜻한다.

뉴욕 주지사였던 루스벨트가 대선 과정에서 내건 구호도 '잊혀진 사람들을 위한 뉴딜'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크게 봐서 국가 개입에 의한 자본의 탐욕 규제, 한계상황에 내몰린 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강화로 나타났다. 구제ㆍ부흥ㆍ개혁이라는 3대 슬로건에 담긴 뜻도 중산층 복원을 통한 건국이념 구현이었다.

오바마 당선인의 신뉴딜은 이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당선 직후 발표한 4대 정책과제에서 경기 부양이나 금융구제의 목표가 중산층 구제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청정에너지 보건의료 교육 중산층 감세를 중심으로 한 장기 성장동력 확보를 강조했다.

'한국판 뉴딜' 미래비전 밝혀야

신뉴딜에서도 인프라 투자 외에 에너지 효율 제고와 21세기형 교육경쟁력 투자에 특별한 방점을 찍었다. 재정적자를 마다하지 않는 구상을 자유 진보진영이 지지하는 것도 그가 '1% 부자만 번창하는 계급국가'로 전락한 미국의 현실을 잘 짚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의 위기대책은 철학과 가치를 찾기 힘들고 수단 역시 계층갈등적이다. 돈을 퍼붓는 임기응변에는 능하지만 집행의 효율성을 따지는 메커니즘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결과는 미래비전의 실종이고 정치권의 정쟁이며 취약계층의 한숨이다. 위기는 기회의 다른 말이라는데 도대체 그 기회의 정체는 뭔가.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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