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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올드 보이'가 아니라면

입력
2008.12.17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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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습관이 돼 버렸다. 정부의 인사발표 때마다 나이부터 먼저 확인한다. 거의 예외 없이 60, 70대다. '가물에 콩 나듯' 40대나 50대가 끼어 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모두 원로만 계시면 어떡하나, 잔 심부름(실무)할 사람 하나쯤은 두어야지."

냉소와 비아냥거림이 처음부터 나온 것은 아니었다. 권위가 경험이 무너진 나라의 모습이 어떤지를 5년 동안 보아왔기 때문이다. 무능한 데다 이기적이며 독선적이기까지 한 386들은 세력교체를 세대교체와 혼동하고, 나이를 '낡음'과 동일시했다. 개혁이라는 깃발 아래 어른들을 미련 없이 쫓아내자 덩달아 여기저기서 그렇게 했다.

인사했다 하면 60, 70대 기용

'잃어버린 10년'은 한나라당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 60,70대에게도 있었다. 그래서 '보수'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모였고, 정권교체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억울함을 풀어주고 수고를 보상이라도 해 주듯 그들을 다시 불렀다. 설익은 이념이나 구호가 아닌 연륜과 경험으로 국가를 경영하겠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보수정부가 아닌가. 과거 정부에게 퇴물 취급 받았던 50대도 극소수를 제외하면 이제는 햇병아리에 불과하다. 대통령의 나이가 그래서인지 경제 교육 문화 어디 할 것 없이 적어도 60세는 돼야 일할 자격을 얻는다.

문제는 그들이 말하는 사고와 경험이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은 '잃어버린 10년' 을 따라 그것 역시 연속성을 잃어버린 채 그 지점에서 멈추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시대와 더불어 쌓지 않은 그들의 사고는 변화를 예측하지 못하고, 경험은 현재성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10년 전에 비해 지금의 세상이, 문화의 패러다임이, 사회의 구조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모른다. 설령 머리로는 이해를 해도, 몸과 마음이 따라가지 못한다. 과거의 소중한 경험으로 현재와 미래를 세우는 역동성을 발휘하지 못한다. 정책이 허둥대고, 지원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느 70대 이사장이 재단의 정체성조차 잊어 버리고 군사독재시절 강압에 못 이겨 나올 법한 발언을 한다. 야당은 이런 사람을 '올드 보이'라고 비하한다. 집에서 한참 쉬고 있다가 나와서 한마디로 현실 감각이 없고, 낡았다는 얘기다. 게다가 '맨'이 아니고 '보이' 이다. 지난 정부의 386 '영 보이'와 마찬가지로 미숙하다.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아이들을 둘 합친 것과 같은 노인"이라는 얘기다. 노인들에게는 오직 과거만 있을 따름이어서, 그들은 과거로만 눈을 돌리려 한다. 30년 전의 대한뉴스가 역사적 진실이고, '돌격 앞으로'라는 구호에 국민 모두가 목숨 걸고 뛸 것이라고 생각한다.

꼭 나이가 많아서, 한동안 현장을 떠나 있었기 때문이어서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이어령 선생을 노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전문성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오랫동안 스스로의 가치와 생각에 갇혀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은 탓에 원로가 아닌 노인이 됐다. 정부가 그들을 자리를 앉힐 때마다 캠프인사, 코드인사라는 비판과 경로잔치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이 같은 '노인들을 위한 인사' 가 단순한 캠프인사이기만을 바란다. 대선기간에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보답인 정실인사. 무작정 욕할 일도 아니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있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욕을 먹더라도 아직 많이 남은 캠프의 노인들까지 가능하면 빨리 털어버려야 한다. 그러고 나서 시대 감각에 맞는 역동적인 세대들과 나아가야 한다.

문제는 경험ㆍ사고의 과거지향

그게 아니고 지금의 인사가 코드에 의한 것이라면 정말 큰 일이다. 이명박 정부 역시 색깔만 다를 뿐 노무현 정부와 별로 다를 게 없다. 자칫 지금과 같은 위기의 시대에 과거에 집착해 또 다른 '잃어버린 시간'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스스로 노인이기를 거부하며 시대와 함께 살아왔고, 그 변화 속에서 국가의 미래를 구상해온 이명박 대통령인 만큼 그럴 리가 없겠지만.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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