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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폐병쟁이 내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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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폐병쟁이 내 사내

입력
2008.12.17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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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몰골만 겨우 사람꼴 갖춰 밤 어두운 길에서 만났더라면 지레 도망질이라도 쳤을 터이지만 눈매만은 미친 듯 타오르는 유월 숲 속 같아 내라도 턱하니 피기침 늑막에 차오르는 물 거두어 주고 싶었네

산가시내 되어 독 오른 뱀을 잡고

백정집 칼잽이 되어 개를 잡아

청솔가지 분질러 진국으로만 고아다가 후 후 불며 먹이고 싶었네 저 미친 듯 타오르는 눈빛을 재워 선한 물같이 맛깔 데인 잎차같이 눕히고 싶었네 끝내 일어서게 하고 싶었네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내 할미 어미가 대처에서 돌아온 지친 남정들 머리맡 지킬 때 허벅살 선지피라도 다투어 먹인 것처럼

어디 내 사내뿐이랴

굽이굽이 막힘없는 가락이 거부할 수 없는 유장한 물결을 이루었다. ‘백정집 칼잽이’, ‘허벅살 선지피’ 처럼 섬뜩하게 날이 선 말들도 이 거침없는 노래 속에서는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생선 배따는 것만 봐도 경악을 금치 못하고 몸서리를 칠 그녀를 서슴없이 백정집 칼잽이가 되게 하는 것은 모전여전의 하염없는 연민이다. 연민을 뗏목 삼아 우리는 더러 섬처럼 고립된 타자에게로 건너가 ‘슬픔만한 거름이 없음’을 발견하는 자신과 만나게 된다. 그래서 ‘미친 듯 타오르는 눈빛을 재워 선한 물같이 맛갈 데인 잎차같이’ 달래주고 싶은 것은 사내만이 아니라 나의 눈빛이기도 하다. 놀라운 것은 그 눈빛이 병든 사내와 나에 머물지 않고 더 많은 아픔들을 향해 열려 있다는 점이다.

모든 여성적인 것들이 우리를 이끌어간다고 했던가. 마른 대지를 적시듯 흐르는 모전여전의 이 도저한 모음을 달여 만든 진국 한 사발이 가슴을 뜨겁게 한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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