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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물소리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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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물소리를 꿈꾸다

입력
2008.12.17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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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번데기로 살 수 있다면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한겨울에도, 뿌리 끝에서 우듬지 끝까지

줄기차게 오르내리는 물소리

고치의 올 올을 아쟁처럼 켜고

나는 그 소리를 숨차게 쟁이며

분꽃 씨처럼 늙어갈 것이다

고치 속이, 눈부신 하늘인양

맘껏 날아다니다 멍이 드는 날갯죽지

세찬 바람에 가지를 휘몰아

제 몸을 후려치는 그의 종아리에서

겨울을 나고 싶다, 얼음장 밑 송사리들

버드나무의 실뿌리를 젖인 듯 머금고

그 때마다 결이 환해지는 버드나무

촬촬, 물소리로 울 수 있다면

날개를 달아도 되나요? 슬몃 투정도 부리며

버드나무와 한 살림을 차리고 싶다

물오른 수컷이 되고 싶다

지인이 들고 온 나무 토막 하나를 몇 개월째 책상 위에 얹어놓고 무료할 때마다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껍질이 벗겨진 나무토막엔 방사형으로 뻗어간 주름 무늬가 있는데, 속살을 파고든 이 주름 한가운데엔 뻗어나간 주름보다 조금 더 깊게 팬 골이 있다. 지인은 이 골이 바로 딱정벌레나 노린재 같은 곤충들이 월동을 한 흔적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주름은 무엇일까? 곤충이 나무를 갉아먹은 흔적? 곤충이 낳은 알들이 부화한 뒤 기어간 흔적? 아무려나, 번데기 주름 같은 이 주름 무늬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내 머릿속엔 아쟁의 현과도 같은 음들이 태어난다. '한겨울에도, 뿌리 끝에서 우듬지 끝까지/ 줄기차게 오르내리는 물소리', 혼자 월동하는 것도 힘든데 세든 곤충들을 위해 버드나무가 불러주는 자장가가 그 곡조다. 유모가 된 나무의 자장가는 얼음장 아래 송사리가 실뿌리를 무는 것만으로도 환해지는 결을 갖고 있다. 이 부드러운 결이 겨우내 갈 곳 없는 곤충들을 품어주는 힘이 된다. 실뿌리를 쭉 빨면 우듬지 끝까지 찌르르 젖이 돌 것 같은 나무속에서 누군들 일가를 꾸리고 싶지 않을까. 속살을 파 먹힌 나무토막을 보니, 성충이 된 곤충의 몸을 빌려 하늘을 날아다닐 나무가 생각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이렇게 얼마쯤은 다들 누군가에게 세를 주고, 동시에 세를 살다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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