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과학기술계는 한국인 최초로 우주인을 배출하는 등 풍성한 뉴스를 만들어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16일 선정 발표한 '올해의 10대 과학기술 뉴스'에는 첫 우주인 이소연 탄생, 차세대 초전도핵융합 연구장치의 첫 플라즈마 발생 등 우주와 미래를 향한 우리 과학계의 발자취가 포함됐다.
그런가 하면 과학기술부가 교육과학기술부로 통합되고, 2008학년도 수능 시험에서 물리문제 오류가 나온 과학계의 그림자도 주요 뉴스로 꼽혔다.
10대 과학기술 뉴스는 과학기술 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과학기술인의 관심을 얼마나 끌었는지, 과학 대중화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등을 기준으로 선정됐다. 10월 후보추천과 1차 선정위원회를 거쳐 19건의 후보 뉴스를 선정한 뒤 2,081명이 참여한 온라인투표와 2차 선정위원회를 거쳤다.
1. 한국 첫 우주인 이소연 탄생
4월 8일 오후 8시 16분 이소연(30) 박사가 세르게이 볼코프, 올레그 코노넨코와 함께 소유즈 TMA-12호를 타고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국제우주정거장(ISS)을 향해 출발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36번째 우주인 배출국이 되었다.
이틀 뒤 ISS에 도킹한 이 박사는 4월 19일 지구로 귀환 전까지 10일간 머물며 18가지의 우주과학 실험을 완수하고 우주활동을 국민에게 생생히 보여주었다.
자체 발사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러시아의 우주선을 빌려 타는 형식의 우주인 배출사업을 놓고 전시성 행정이라는 논란이 없지 않았지만 이씨의 우주여행은 우리나라의 우주에 대한 도전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고 국민과 특히 청소년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박사에게 귀국 후 6개월이 지나도록 계속 쏟아지고 있는 강연 요청은 이러한 국민의 관심을 보여준다. 그는 세계 480여명의 우주인 중 여성으로서는 49번째 우주인이다.
2. 핵융합 연구장치 KSTAR 최초 플라즈마 발생
지난해 9월 완공된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KSTAR)가 종합 시운전을 마치고 7월 15일 첫 플라즈마를 발생시켰다. 당초 예상 목표치를 뛰어넘어 플라즈마 전류 133킬로암페어(kA), 플라즈마 지속시간 249밀리초(ms)에 달했다.
이는 핵융합에너지 연구를 위한 본격적인 운영 단계에 안착했다는 의미이며 나아가 핵융합에너지를 상용화하기 위해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고성능 플라즈마의 장시간 운전'을 향한 첫 걸음을 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세계적인 학술지 '사이언스'도 이 소식을 타전했다.
국내 기술로 지어진 KSTAR는 한국 EU 미국 일본 등 7개국이 참여하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와 똑 같은 초전도 재료(니오븀 주석합금)를 사용한 첫 핵융합로여서 핵융합에너지의 미래를 점칠 ITER의 파일럿 장치로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3. 과학기술행정체제 개편과 과학기술계의 우려
새정부 출범과 함께 40년 역사의 과학기술부가 독립부처의 지위를 잃고 교육인적자원부와 통합, 교육과학기술부로 개편됐다. 지난 정부에서 과기부는 부총리 부처로 승격되고 권한이 확대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성공 사례로 지목하기도 했던 터라 이 같은 통폐합은 과학기술계에 당혹감과 우려를 안겼다.
과학기술단체를 총망라한 과총, 정부출연 연구원의 박사급 2,000여명으로 구성된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 등이 "국가 연구개발 조정기능이 떨어지고 과학기술행정이 위축될 뿐 아니라 500만 과학기술인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4. 암 진단·치료용 나노전달물질 개발
현택환 서울대 교수팀은 암 진단과 치료에 모두 적용할 수 있는 100나노미터(㎚) 이하의 다공성 나노입자 제조기술을 개발, 10월 세계적인 화학회지 '앙게반테 케미'에 게재했다. 자기공명영상장치(MRI) 조영제로 쓰이는 자성 입자의 겉표면을 다공성 실리카로 둘러싸 50~100㎚의 균일한 나노입자로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다공성 나노입자에 형광염료를 넣어 암에 걸린 쥐의 혈관에 투여하자 2시간 후 나노입자들이 암 조직에 축적된 것을 MRI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에 항암제를 넣으면 암 조직만 선택적으로 파괴하는 치료제로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5. 인류 최대 과학장치 대형강입자가속기(LHC) 가동
스위스 제네바 인근 프랑스와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대형강입자가속기(LHC)가 9월 10일 오후 4시 36분 첫 양성자 빔을 발사, 물질의 근원과 우주탄생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가동에 돌입했다. 지하 100m, 원둘레 27㎞의 이 원형 가속기는 1994년부터 80억달러를 들여 지은 사상 최대의 실험장비다.
첫 가동 후 고장으로 내년 여름께 재개될 실험은 빛의 속도의 99.9999991%의 속도로 양성자 빔을 정면충돌시켜 빅뱅 직후와 비슷한 조건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동안 실험적으로 확인하지 못하고 예견만 되어 온 힉스 입자를 찾아내 표준모형을 완성하는 것이 LHC의 첫번째 목표다. 국내 물리학자 80명을 포함, 전세계 과학자 1만여명이 참여하는 대형 프로젝트.
6. 휴대폰용 촉각센서 마우스 산업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3월 5일 촉각센서를 활용한 초소형 마우스 및 터치스크린 기술을 325억원에 미성포리테크에 기술이전했다. 이 기술료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이전 이후 최대 규모의 공공연구기관 기술이전액이다.
이 기술은 여러 힘센서들로 이루어진 유연성 촉각센서기술로 휴대폰, MP3, UM PC, 내비게이션 등 모바일 기기들에 손톱 크기만한 마우스를 장착할 수 있게 한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이 기본임무인 원천기술에 장기 투자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해낸 성공 사례로 꼽혔다.
7. 국립과천과학관 개관
전시, 체험, 놀이와 교육이 융합된 과천과학관이 11월 14일 개관했다. 정부와 경기도가 총 4,500억원을 들여 2년6개월 만에 완공했으며 서울대공원 앞 24만3,970㎡의 부지에 연면적 4만9,464㎡, 전시면적 1만9,127㎡ 규모로 지어졌다. 대전에 있는 국립중앙과학관의 3배 규모로 그동안 수도권에 변변한 과학관 하나 없었다는 자괴감을 씻어주었다.
685개의 주제 아래 4,203점의 전시물 등이 갖춰졌으며 특히 앉은 자리에서 우주여행 체험이 가능한 천체관과 지진체험실, 태풍체험실 등 체험시설이 백미다.
8. 속씨식물의 쌍둥이정자 형성과정 규명
남홍길 포스텍 교수는 속씨식물이 중복수정을 하기 위해 정자를 두 벌 만드는 메커니즘을 규명, 10월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했다. 단백질 복합체 SCFFBL17이 세포분열을 활성화하는 생체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것을 규명한 것이 핵심이다.
이로써 지금까지 식물학계에서 풀리지 않은 숙제였던 중복수정의 메커니즘이 분자 수준에서 밝혀졌으며 남 교수는 소위 3대 저널로 꼽히는 '사이언스' '네이처' '셀'에 모두 논문을 게재한 과학자로 기록됐다. 그는 생체시계 관련 연구로 1999년 '사이언스', 2005년 '셀'에 논문을 발표했었다.
9. 춤추는 휴머노이드 로봇 '마루' 개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유범재 박사팀은 상·하체를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인간형 로봇 마루를 개발, 10월 공개했다.
지금까지 개발된 다른 인간형 로봇들은 물건을 잡기 위해 팔을 움직일 때는 제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 등 걸으면서 할 수 있는 상체운동이 매우 제한적이었으나 마루는 한 팔을 흔드는 것과 같은 상체운동을 하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걸을 수 있다. 팔동작에 의해 무게중심이 바뀌는 것에 스스로 대응해 전신운동계획을 계산하는 기술이 핵심이다.
이러한 전신운동 기술은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서 문과 서랍을 여닫고 가전기기를 작동하고 설거지, 심부름 등 가사노동을 하는 서비스 로봇을 현실화하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10. 수능 물리문제 오류 및 정답 수정
2007년 12월 24일 한국물리학회가 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영역 물리Ⅱ 11번 문항에 대해 "답이 다르거나 복수정답이 가능하다"는 오류 가능성을 제기, 결국 교육과학기술부가 복수정답을 인정했다.
애초에 시험을 주관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교과부가 문제에 대한 이의 제기와 물리학회의 지적을 무시하다가 논란이 확산되자 뒤늦게 오류를 인정, 채점을 다시 하고 입시일정을 수정해야 했다.
교과부가 복수정답을 인정한 것이나 학회가 수능시험에 전문가로서 의견을 밝힌 것 모두 드문 일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시험 출제의 오류 가능성과 평가원측의 경직적인 대응에 대해서는 여전히 문제가 많다는 의견이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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