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에 관한 법률 개정이 정치권의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이 지난 3일 내놓은 7개 미디어 관련법 개정안에 대한 논란이 심하다. 한나라당이 발의한 관련법 개정안은 신문ㆍ방송 겸영금지 조항 삭제를 골자로 한 신문법 개정안을 비롯해 언론중재법, 방송법,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 전파법,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의 디지털 전환 특별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 등이다.
7개 법안 가운데 특히 신문과 방송의 겸영 과 대자본의 방송산업 진입을 허용하는 것을 각각 골자로 한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안이 초미의 관심사이다.
의문스러운 '국민 공감대'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의 핵심은 소유 제한과 겸영 규제를 사실상 폐지하자는 것이다. 방송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을 키우기 위해 대자본 진출을 허용해야 한다거나, 신문과의 겸영을 통해 전체 미디어 산업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대자본이나 신문사업자가 방송에 진출하면 여론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일부 언론의 독과점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 또한 설득력이 있다. 특히 2006년에 이미 헌법재판소가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신문ㆍ방송의 겸영을 금지하는 법 규정을 합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기 때문에 법 개정을 둘러싼 갈등은 쉽사리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미디어가 산업으로 존립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되어야 한다. 방송을 비롯한 미디어는 광고주나 수용자가 선호하는 방향으로 미디어의 내용을 생산할 수밖에 없으며, 그 대부분은 공익적인 것보다 오락적인 것이 될 것은 자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의 공공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떨쳐버릴 수 없다. 시장경쟁만 강조하다 보면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공익적이고 공공적인 것들을 가벼이 여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디어 관련법 개정 논란에서 우선 의아한 것은 구체적 개정 이유에 대해 국민의 공감대가 과연 얼마나 형성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번 법 개정은 다분히 사업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인상을 씻기 어렵다. 방송의 소유 규제와 신문ㆍ방송 겸영규제는 수용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떠한 혜택이 돌아가는지에 대한 분명한 설명도 없었다.
이런 수용자 무시 태도는 방송의 디지털화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2012년부터 실시될 텔레비전 방송의 디지털화는 우리의 방송환경을 또 한 차례 커다란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고화질과 다채널 등 수신환경의 커다란 변화도 뒤따를 전망이다. 정부는 이러한 디지털화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을 터인데, 정작 실제 수용자인 국민을 위해서는 어떠한 준비를 하고 있는지 자못 의심스럽다.
소비자 배려 없는 졸속
적어도 지금쯤은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텔레비전을 사는 소비자가 "이 텔레비전은 2012년 이후에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라는 경고 메시지를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당위와 거리 먼 현실이 수용자에 대한 고려는 없이 오직 사업자를 위한 정책만 난무한다는 느낌을 준다. 법 개정을 준비하는 측이 너무 급하게 서두르는 것은 아닌가.
아마도 다음에는 손 볼 기회가 없을 것이란 불안감이나,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감과 조급함에 사로잡힌 것은 아닐까. 여러 차례 공청회와 토론회를 거쳐 충분히 다듬어지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서둘러 잘못 만든 법보다는 조금 늦지만 제대로 된 법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빨리 빨리'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한진만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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