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한국 가요계의 전성기는 사실 '공일오비'의 데뷔(1989년)로 태동했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다. 신해철의 '무한궤도'에서 갈라져 나온 장호일과 정석원의 공일오비는 보컬을 외부에서 조달받는 객원가수라는 특이한 방식을 국내 처음으로 도입했다.
덕분에 그룹의 신선함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시절을 한 단계 앞서는 음악스타일이 가능했으며 이들의 약간 전위적인 스타일과 감수성 넘치는 선율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격동기 이전을 지배했다.
1996년 해산 이후 2006년 앨범과 공연으로 돌아왔던 공일오비가 27일 서울 코엑스 대서양홀에서 2년 만에 다시 대중 앞에 선다. 윤종신(1집 '텅 빈 거리에서'), 이장우(2집 '떠나간 후에'), 조성민(5집 '단발머리'), 김태우(3집 '아주 오래된 연인들) 등 주요 객원멤버들과 같이 무대를 꾸민다. 공일오비의 장호일과 객원 조성민을 최근 함께 만나 공연, 그리고 예정된 신보 얘기를 나눴다.
"90년대 초반에 저희를 좋아했던 팬들을 위한 공연이 될 거에요. 그래서 7집의 음악들은 선곡에서 뺐죠. 그야말로 공일오비의 정서를 함께 공유하는 자리를 만들 예정입니다."
장호일의 말처럼 이번 공연은 어쩌면 30대 이상의 '골수 공일오비 팬'들을 위한 잔치이다. 장호일은 이래서 "7집 중에선 무슨 곡이 불리나요"라는 20대 팬의 인터넷 게시판 질문에 미안한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단다.
10년이란 공백이 있었지만 가요계를 깊이 관통하는 공일오비의 정서가 무엇이기에 이들은 여전히 90년대 초반의 팬들에게 집중할까.
"지금이나 20년 전이나 공일오비는 당시의 음악보다 약간 앞서가는 것을 했어요. 그래서 7집에서는 일렉트로닉과 힙합을 선보였죠. 하지만 멤버들도 나이가 드니 20대의 감성을 정확히 집어내긴 힘들었겠죠."(성민)
"90년대 그 느낌의 스타일을 계속 고집해서 원래 팬들을 만족시키느냐, 하지만 이런 노선은 자칫 촌스럽다는 욕을 먹을 수 있었고. 저희도 의견이 많이 분분했어요. 어쨌든 공일오비를 통해 감성의 기반이 닦였다고 말하는 30대 팬들이 소중하죠."(호일)
공일오비의 객원 시스템은 신인가수에겐 등용문이었고, 인맥형성에 있어서 더 할 수 없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밀리언셀러가 된 3, 4집 무렵 공일오비의 오디션엔 수십 명의 객원후보들이 몰릴 정도였다. 내년 상반기 신보 발매를 준비중인 공일오비는 이번에도 객원 물색에 들어갈 예정이다.
"항상 신선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었던 게 장점이지만 앨범이 쌓여가도 공일오비의 색깔이 짙어지지 않고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해야 한다는 게 단점이었어요."(호일)
"공일오비가 가요 톱 텐 1등을 했는데 방송에 나오지 않아서 빈 무대만 전파를 탄 적이 있었어요. 쇼킹한 뮤지션이란 생각이 머리를 쳤죠. 여기에 시대를 대변하는 가사들. 그때는 공일오비가 서태지였어요."(성민)
양홍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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