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상상의 동물 해치(獬豸)를 상징물로 삼은 지 반년이 넘었지만 시민들의 친근감은 기대 이하인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랫동안 귀에 익어 뇌리에 박힌 '해태'를 지우고 '해치'라는 새 이름을 들여앉히기가 우선 쉽지 않다. 광화문 앞의 순하고 우스꽝스러운 해태상에서 해치의 원래 모습을 떠올리기는 더욱 어렵다.
선악을 가려 악인을 뿔로 받아 죽이고, 잡아먹기까지 한다는 해치와는 너무 다르다. 중국의 해치상은 괴기영화에나 어울릴 듯하고, 대검찰청이나 사법연수원의 해치상은 조금 낫지만 역시 두려움을 자아내기에 족하다.
■이런 겉모습의 차이가 '해치=해태의 원형'이란 통설에 대한 다양한 반론을 불렀다. 해태는 상상의 바다동물인 '해타(海駝)'에서 나온 말로 육지동물인 해치와는 다르다는 주장은 어설프다. 그런 바다동물을 찾을 수가 없는 데다 그 배경인 '관악산의 불기운을 누르기 위해 바다기운을 띤 해태상을 광화문에 두었다'는 속설은 원래 감찰ㆍ탄핵 기관인 사헌부 앞에 놓였던 해태상이 일제 강점기에 광화문 앞으로 옮겨졌음을 간과했다. 반면 광화문 해태상은 해치나 해타가 아니라 한국 토종 삽사리를 형상화했다는 주장은 일고할 만하다.
■일본 신사의 '고마이누'(狛犬) 석상은 해태상과 많이 닮았다. 원래 한자표기도 '한국 개'라는 뜻의 '고려견(高麗犬)'이었다. 곧바로 삽사리가 떠오른다. 흔히 좌우 한 쌍으로 서 있는 고마이누의 오른쪽 '아교(阿形)'는 뿔 없이 입을 벌리고 있고, 맞은 편의 '운교(吽形)'는 뿔 하나가 솟았고 입은 다물고 있다. 한 쌍을 합쳐 '고마이누'라고 하지만, 정확하게는 뿔 없는 쪽은 '시시(獅子)', 뿔 있는 쪽은 '고마이누'라고 부른다. 중국의 해치가 한반도에서 삽사리의 이미지와 뒤섞여 해학적인 모습으로 바뀌었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문화교류와 발전은 수많은 덧칠하기를 통해 이뤄진다. 덧칠하기가 심해서 원형을 더듬기조차 어려운 예도 많다. 해치의 원형을 따지기보다 융화된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퍼뜨리는 게 중요하다. 오키나와의 상징물인 '시사'(사자)는 원래 궁궐이나 사찰, 귀족 무덤 앞에 놓인 종교적 장치였지만, 19세기 말 서민들에게 기와지붕이 허용된 후 지붕 장식물로 널리 쓰이면서 복덕의 상징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식당 입구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해치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새롭게 발굴해 퍼뜨리겠다는 서울시의 계획에 눈이 간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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